나의 수필(행정리후)

나의 하프타임

시육지 2017. 3. 5. 04:49

         

 

                 나의 하프타임

 

                                         최병우

 

축구경기에는 하프타임이 있다. 전반전이 끝나면 잠시 쉬며 후반전을 대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코치가 선수들에게 전반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후반전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대비해 준다. 이때 코치의 지도에 집중하지 않거나 대책 없이 임하면 후반전은 그야말로 실패의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청년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지내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제대로 갖지 않으면 후반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인생의 하프타임이 중요한데 우리 시니어들에게는 이 말이 아주 생소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지난 시절은 일에 파묻혀 헤어나질 못했고, 빡빡한 일정에 잠을 설쳤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자녀 양육 등으로 구슬땀을 흘리고 일하다보니 하프타임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인생의 하프타임은 언제일까. 앞으로 100세 시대인데 4050세가 이 시기일까? 그러면 시니어들에게는 하프타임이 이미 지나가고 없단 말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프타임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대비하려는 때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100세를 산다면 장수이니 복이라고 할 수 있으나 준비되지 못한 장수를 과연 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진정한 장수의 복은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야 하고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것인지 고민은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시니어들은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계획해야 하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적인 사고와 혁신적 발상으로 대처하기 위한 하프타임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겐 노인복지관에서 인문학을 배우는 시간이 나의 하프타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하여 내 인생이 새롭게 바뀌었다.

 

첫째는 나의 존재적 가치를 알게 되었다. 무의미하게 보내던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으니 말이다. 방구석의 늙은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경륜과 지혜가 시니어의 자존감이고, 그것들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난 내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가 내 인생의 도서관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혀있는 보석이 젊은이와 또 다른 시니어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데 자부심마저 들었다.

 

둘째로는 나의 잠재적 능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글쓰기다. 인문학 강좌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가온 글쓰기를 통해서 말이다.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 꺼려왔던 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숙제 삼아 제출한 글을 다듬어 발표하는 그 시간은 내게 걸음마에 도전하는 아기 같은 마음을 주었다. 그 결과 이제는 글쓰기가 우연한 만남이라기보다 필연으로 자리 잡았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늘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고, 성찰하지 않으면 파렴치만 는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 말했다. “성공하는 사람은 목적과 비전이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듯 잃어버린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늙어 감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남은 시간을 아껴 쓰자. 마지막 날에 인생을 너무 헛되게 살았다고 탄식하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자기 관리하기에 따라 노년은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슬프고 고달파지기도 한다. 시간을 아끼고 보람 있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는 결심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내게 맞는 하프타임을 계속해 잘 관리해 갈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의 남은 때를 맑은 영혼과 함께 당당한 시니어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이렇게 결심한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덤 인생의 시작이니 마음껏 자축하며 오늘을 힘차게 출발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