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닦기
- 발 닦기 -
최 병 우
추운겨울날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건너 방 아궁이에 불을 때셨다.
뜨물통에 있는 물을 쇠죽솥에 붓고 여물을 수북이 안친 다음
손풀무 돌려가며 왕겨 불을 때셨다.
솥에 김이 나고 눈물이 흐르면 솥뚜껑 여시고
등겨 한바가지를 넣고 주걱으로 골고루 뒤집으셨다.
그리곤 푹 삶긴 여물위에 물 담은 대야를 평평하게 눌러놓고
솥뚜껑 닫은 후 불을 조금 더 때시다가 뜸을 드렸다.
어둡도록 밖에서 술래잡기하다가 부르시는 소리에 마지못해 가보면
아버지는 소외양간 구유에 쇠죽 퍼다 주시고 계셨다.
그리고는 솥에서 꺼내 놓은 대야의 더운 물로 발을 닦으라셨다.
발 닦은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
봉당 기둥 밑 주춧돌 모서리에 오랜만에 걸터앉아
대야에 발 담그려 양말을 벗으면 발은 마치 까마귀의 친구 같았다.
저녁에 잘 때 벗어 머리맡에 두었다가 이른 아침에 신는 양말은
언제 바꿔 신었는지 외양간에서 나는 냄새 같아 코에 댈 수가 없었다.
까마귀 같은 발이 불어서 벗겨지려면 마음은 급해도 오래 기다려야했다.
푸른 하늘 은하수, 애국가도 여러 번 씩씩하게 부른 후에야
그 때서야 때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힘주어 닦으니 어느덧 하얀 발이 되었다.
대야의 남은 물을 안마당에 확 뿌리고,
헹궈진 검정 고무신을 앉아있던 돌에 기대놓고
마루에 올라앉으면 너무 좋았다.
보름이나 한 달은 이런 것 안 해도 좋다는 생각에
기분이 최고였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아버지께서 발을 닦으라고 하셨던 기억이,
퇴근 후, 방과 후 귀가하여 발 닦지 않으면
냄새나고 비위생적이라며 펄쩍뛰는 요즘 세대에
한 폭의 낭만 같은 소중한 나의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