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청설모
노인과 청설모 / 최병우
지난해에 젊은 청설모 부부가 민가 근처 야산으로 분가했다. 따뜻한 봄 어느 날, 뛰어노는 다섯 자식들을 대견스러워하며 아내청설모가 남편에게 말했다.
“지난겨울엔 당신이 너무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열심히 양식 준비하지 않았으면 우리 자식들 못 길렀을 거예요,”
“무얼! 좁은 집에서 당신이 잘 참아 주었지. 거둬드린 것이라곤 겨우 쓴 도토리 밖에 없었는데”라고 남편이 답했다.
“맞아요, 다행히 작년엔 도토리가 풍년이라서 춘궁기인 지금도 가랑잎만 들추면 먹을 것이 넉넉해서 다행 이예요.”라고 아내가 말했다.
이파리 무성한 여름이 다가올 때까지 그들은 양식걱정 없이 잘 지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다가올 겨울이 걱정되었다. 늘어난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면 더 많은 양식을 저장해야했다. 작년엔 다행히 맛은 없어도 도토리가 넘쳤지만 올 해는 어찌될지 알 수가 없다.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부부는 주변을 살피러 나섰다. 먼저 작년에 많은 열매를 수확했던 도토리나무 숲을 찾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렇게 많이 열렸던 도토리가 올해는 흉년이라서 잎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닌가. 농부가 가을에 수확하듯 그들도 열매를 거둬들여 겨울양식을 준비해야하는데 큰일이었다.
“이사를 해야 하나, 어쩌지? 아니야 조금 더 찾아보자고.”
부부는 눈을 부라리고 아무리 숲을 뒤져봐도 겨울양식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 할까, 며칠을 헤맨 끝에 횡재를 만났다. 자기네 온 식구가 겨우내 먹고도 남을 만큼 큰 먹 거리 그것도 안심 먹 거리를 찾아냈다. 바로 큰 호두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개량자두보다 더 큰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가지가 축축 늘어졌다.
“아!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견과류 호두라니! 아니 이게 웬 떡이냐!”
그들은 외치며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추운 겨울에 온 식구가 잔치하듯 풍족히 먹으며 지낼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청설모부부는 무심코 나무아래를 보았다. 유기질 퇴비가 땅속에 잔뜩 묻혀있고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았는지 잡초도 없다. 나뭇가지는 균형 있게 전지되어 햇빛도 잘 들어오고 바람도 잘 통했다. 줄기와 잎 그리고 굵은 호두알도 병충해 하나 없이 모두 싱싱했다. 농약도 적기에 살포했기 때문에 수확기에는 잔류농약도 없는 그야말로 유기농산물이 분명했다. 보면 볼수록 산삼이라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에 신바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후 청설모부부는 마치 호두나무가 자기들의 것 인양 열매를 언제쯤 따야할지 확인하기 위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갔다. 어느 날 나무에 올라 익어가는 호두열매를 살짝 비집어보고 있는데 밑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주인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굵은 나무를 쓰다듬고 열매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은 지 10년이 됐지만 올해 같이 잘된 것은 처음이네. 호두풍년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추수하면 한가마니도 넘겠어.”
“그럴 것 같아요. 나는 이 호두로 지금껏 신세진 사람들에게 넉넉히 선물할거요.”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그럽시다. 2주 후면 완전히 익어 겉껍질이 갈라져 아람이 될 거야. 그 때 따기로 합시다.”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할아버지는 시내 철물점에 가서 호두 따는 장대도 사왔다.
한편 청설모부부는 의논 끝에 일주 후에 수확하기로 했다. 너무 단단한 것보다 그 때 수확해야 깨어 먹기도 좋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저장할 장소로 굴 속 두 곳과 두껍게 쌓인 가랑잎 아래 두 곳을 마련하였다.
계획한 날이 다가오자 일곱 식구가 총 동원되어 호두를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어린 자식들은 큰 호두를 입에 물수 없어 작은 것만 물어 날랐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긴 했으나 그들은 신기한 듯 사진만 찍어댔다. 꼬박 사흘이 걸렸다. 쌓아둔 네 곳은 산더미가 되었다. 서둘러 호두 창고를 덮어 흔적도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모두 행복한 휴식을 취했다.
할아버지부부는 한 주일 늦게 큰 자루와 장대를 들고 호두를 따러 왔다. 나무 위를 쳐다보던 노부부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호두가 하나도 없어요!”
“어? 진짜네! 어찌 된 거야. 어느 놈이 따간 거야?”
“어느 놈은? 청설모가 그랬지 뭐요!”
노부부는 망연자실하였다. 애써 길러 주렁주렁 열렸던 그 많은 호두를 잃어버린 아쉬움에 청설모를 사정없이 욕해댔다. 눈뜨고 도둑맞은 것 같은 허탈함, 억울하기 짝이 없는 비통함에 노인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혹시나 하고 나무 위를 살펴보니 몇 개 남아있어 장대로 따며 아픈 마음을 위안 삼았다. 한가마를 따서 신세진 이웃에게 선물할 계획은 물거품이 되 버렸다.
노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청설모를 욕하고 다니며 향 후 대책을 물었다. 사람들은 덫을 놓거나 그물을 씌우거나 끈끈이를 발라 퇴치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엔 아무 소용없으니 나무를 베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노부부는 아깝지만, 동네 사람들 말처럼 차라리 베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청설모부부는 허탈해하는 노부부의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자기들을 온갖 방법으로 퇴치하려는 분노의 눈과 마주칠 때면 두려움이 다가왔다.
우리로선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찌해야 하나?
이대로 등을 지고 적대하며 계속 살아야 할까?
아니면 이사해야 할까?
사과하고 화해해 볼까? 그러면 어떻게 화해하지?
청설모부부는 닥쳐온 고민에 잠을 며칠 째 설쳤다.
할아버지도 도둑맞은 호두와 죽일 놈의 청설모 생각으로 그 많던 초저녁잠을 벌써 며칠 째 못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빠지더니 새벽에 꿈을 꾸었다.
깊은 산속 온갖 새와 곤충들이 노래하는 가을,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곳에 아름다운 이층집이 보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노인부부가 살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들이 자기들이었다. 아래층 온돌방침실은 따뜻했고, 남쪽 창문 커튼사이로는 햇살이 가을 낭만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넓은 거실에는 고풍스런 소파와 탁자가 반가움을 노래하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부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단숨에 나무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아래층과 같은 구조다. 넓은 거실을 지나 방문을 두드리니 문이 살며시 열렸다. 노인부부는 깜짝 놀랐다. 하늘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며 일곱 천사가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 천사들은 평화와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침실의 가장 좋은 자리로 노인부부를 안내했다.
노인은 궁금하여 그들의 존재를 물었다. 자기들은 청설모인데 노인부부의 눈에 천사로 비친 것뿐이라고 했다. 자기들은 이곳에 와서 노인부부와 자기들이 살 집을 짓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청설모 천사는 밖으로 나와 노인 부부를 울창한 가을 단풍 숲으로 안내했다. 그 넓은 단풍 숲은 온통 굵은 나무들로 빽빽했다. 노인부부는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모두가 호두나무였다. 지난번 도둑맞았던 그런 호두나무들이 아람이 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춤을 추고 있었다. 노인 부부는 나무기둥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기뻐 탄성을 질렀다. 그러다가 잠을 깼다.
그 해 겨울이 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고 여름 지나 가을이 되었다. 호두농사가 작년만큼은 안됐어도 곧잘 열렸다. 할아버지는 청설모들이 궁금하였다.
“왜 여태껏 눈에 안 띄지?”
올해 들어 지금까지 청설모들이 안 보이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작년에 내가 청설모 꿈꾼 얘기 해준 것 기억해?”
“생생하지요, 그런데, 왜요?”
“이놈들을 내가 미워했더니 내 얘길 듣고 어디로 갔나봐?”
“맞아요, 그 때 너무 심하게 욕을 했어요.”
“그렇지! 에이! 좀 참을 걸.”
그 후 청설모는 할아버지가 꿈속에서 본 깊은 그 숲속으로 이사했는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노인과 청설모 / 최병우
지난해에 젊은 청설모 부부가 민가 근처 야산으로 분가했다. 따뜻한 봄 어느 날 뛰어노는 다섯 자식들을 대견스러워하며 아내청설모가 말했다.
“지난겨울엔 당신이 너무 수고하셨어요. 그렇게 열심히 양식 준비하지 않았으면 우리 아이들 못 길렀을 거예요,”
“무얼! 좁은 집에서 당신이 잘 참아 주었지. 거둬드린 것이라곤 겨우 쓴 도토리 밖에 없었는데”라고 남편청설모가 답했다.
“그렇지요, 다행히 작년엔 도토리가 풍년이라서 춘궁기인 지금도 가랑잎만 들추면 먹을 것이 넉넉해서 다행 이예요.”라고 아내가 말했다.
이파리 무성한 여름이 다가올 때까지 그들은 양식걱정 없이 잘 지냈다. 그러나 그들 부부는 다가올 겨울이 걱정되었다. 늘어난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면 더 많은 양식을 저장해야했다. 작년엔 다행히 맛은 없어도 도토리가 넘쳤지만 올 해는 어찌될 찌 알 수가 없다.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부부는 주변을 살피러 나섰다. 먼저 작년에 많은 열매를 수확했던 도토리나무 숲을 찾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렇게 많이 열렸던 도토리가 올해는 흉년이라서 잎만 무성했지 열매가 없는 것이 아닌가. 농부가 가을에 수확하듯 그들도 열매를 거둬들여 겨울양식을 준비해야하는데 큰일이었다.
“이사를 해야 하나 어쩌지? 아니야 조금 더 찾아보자.”
부부는 눈을 부라리고 아무리 숲을 뒤져봐도 겨울양식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 할까. 며칠을 헤맨 끝에 횡재를 만났다. 자기들 온 식구가 겨우내 먹고도 남을 만큼 큰 먹 거리 그것도 안심 먹 거리를 찾아냈다. 바로 큰 호두나무다. 개량자두보다 더 큰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서 가지가 축축 늘어졌다.
“아!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견과류 호두라니! 아니 이게 웬 떡이냐!”
그들은 나무 꼭대기까지 오르내리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추운 겨울에 온 식구가 잔치하듯 풍족히 먹으며 지낼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청설모부부는 무심코 나무아래를 보았다. 유기질 퇴비가 땅속에 잔뜩 묻혀있고 사람의 발길이 자주 닿았는지 잡초도 없다. 나뭇가지는 균형 있게 전지되어 햇빛도 잘 들어오고 바람도 잘 통했다. 줄기와 잎 그리고 굵은 호두알도 병충해 하나 없이 모두 싱싱했다. 농약도 적기에 살포했기 때문에 수확기에는 잔류농약도 없는 그야말로 유기농산물이 분명했다. 보면 볼수록 산삼이라도 찾아낸 것 같은 기분에 신바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후 청설모부부는 마치 호두나무가 자기들의 것 인양 열매를 언제쯤 따야할지 확인하기 위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오갔다. 어느 날 나무에 올라 익어가는 호두열매를 살짝 비집어보고 있는데 밑에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자세히 보니 주인 노부부였다.
할아버지는 굵은 나무를 쓰다듬고 열매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심은 지 10년이 됐지만 올해 같이 잘된 것은 처음이네. 호두풍년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가! 추수하면 한가마니도 넘겠어.”
“그럴 것 같아요. 나는 이 호두로 지금껏 신세진 사람들에게 넉넉히 선물할거요.”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그럽시다. 2주 후면 완전히 익어 겉껍질이 갈라져 아람이 될 거야. 그 때 따기로 합시다.”라고 할아버지가 말했다. 며칠 후 할아버지는 호두 따는 장대도 시내 철물점에 가서 사왔다.
한편 청설모부부는 의논 끝에 일주 후에 수확하기로 결정했다. 너무 단단한 것보다 그 때에 수확해야 깨어 먹기도 좋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다. 저장할 장소로 굴 속 두 곳과 두텁게 쌓인 가랑잎 아래 두 곳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부터 일곱 식구가 총 동원되어 물어 나르기 시작했다. 어린 자식들은 큰 호두를 입에 물수 없어 작은 것만 물어 날랐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띄긴 했으나 신기한 듯 사진만 찍어댔다. 꼬박 삼일이 걸렸다. 쌓아둔 네 곳은 산더미가 되었다. 서둘러 흔적도 없애버렸다. 그리고는 모두 행복한 휴식을 취했다.
할아버지부부는 한 주일 늦게 큰 자루와 장대를 들고 호두를 따러 왔다. 나무 위를 쳐다보던 노부부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럴 수가! 호두가 하나도 없어요!”
“어? 진짜네! 어찌 된 거야. 어느 놈이 따간 거야?”
“어느 놈은? 청설모가 그랬지 뭐요!”
노부부는 망연자실하였다. 애써 길러 주렁주렁 열렸던 그 많은 호두를 잃어버린 아쉬움에 청설모를 사정없이 욕해댔다. 눈뜨고 도둑맞은 것 같은 허탈함, 억울하기 짝이 없는 비통함에 노인들은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혹시나 하고 나무 위를 살펴보니 몇 개 남아있어 장대로 따며 아픈 마음을 위안 삼았다. 한가마를 따서 신세진 이웃에게 선물할 계획은 물거품이 되 버렸다.
노부부는 동네 사람들에게 청설모를 욕하고 다니며 향 후 대책을 물었다. 사람들은 덫을 놓거나 그물을 씌우거나 끈끈이를 발라 퇴치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결국엔 아무 소용없으니 나무를 베어버려야 한다고 했다. 노부부는 아깝지만 동네 사람들 말처럼 차라리 베어버리는 것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청설모부부는 허탈해하는 노부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허지만 자기들을 온갖 방법으로 퇴치하려는 노부부의 모습에는 두려움을 느꼈다.
우리로선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찌해야하나?
이대로 등을 지고 적대하며 계속 살아야 할까?
아니면 이사해야 할까?
사과하고 화해해 볼까? 그러면 어떻게 화해하지?
청설모부부는 닥쳐온 고민에 잠을 며칠 째 설쳤다.
할아버지는 도둑맞은 호두와 죽일 놈의 청설모 생각으로 그 많던 초저녁잠을 벌써 며칠 째 못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부터 깊은 잠에 빠지더니 새벽에 꿈을 꾸었다.
깊은 산속 온갖 새와 곤충들이 노래하는 초가을, 우거진 숲으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곳에 아름다운 2층집이 보였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노인부부가 살고 있었다. 유심히 살펴보니 그들이 자기들이었다. 아래층 온돌방침실은 따뜻했고, 남쪽 창문 커튼사이로는 햇살이 가을낭만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넓은 거실에는 고풍스런 소파와 탁자가 반가움을 노래하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부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단숨에 나무계단을 밟고 2층으로 올라가보았다.
아래층과 같은 구조다. 넓은 거실을 지나 방문을 두드리니 문이 살며시 열렸다. 노인부부는 깜짝 놀랐다. 하늘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노래가 들리며 일곱 천사들이 웃으며 반겨주었다. 그 천사들은 평화와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침실의 가장 좋은 자리로 노인부부를 안내했다. 노인은 궁금하여 그들의 존재를 물었다. 자기들은 청설모인데 노인부부의 눈에 천사로 비친 것뿐이라고 했다. 자기들은 이곳에 와서 노인부부와 자기들이 살 집을 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청설모천사는 밖으로 나와 노인부부를 울창한 가을단풍 숲으로 안내했다. 그 넓은 단풍 숲은 온통 굵은 나무들로 빽빽했다. 노인부부는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모두가 호두나무였다. 지난번 도둑맞았던 그런 호두나무들이 아람이 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춤을 추고 있었다. 노인부부는 나무기둥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기뻐 탄성을 질렀다. 그러다가 잠을 깼다.
그 해 겨울이 갔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고 여름 지나 가을이 되었다. 호두농사는 작년만큼은 안됐어도 곧잘 열렸다. 할아버지는 청설모들이 궁금하였다.
“왜 여태껏 눈에 안 띄지?”
올해 들어 지금까지 청설모들이 안 보이자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작년에 내가 청설모 꿈꾼 얘기 해준 것 기억해?”
“생생하지요, 바로 내 꿈같았는데, 그런데 왜요?”
“이놈들을 내가 미워했더니 내 얘길 듣고 어디로 갔나봐?”
“맞아요, 그 때 너무 심하게 욕을 했어요.”
“그렇지! 에이! 좀 참았을 걸.”
청설모는 그 후 할아버지가 꿈속에서 본 깊은 그 숲속으로 이사했는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