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행정리후)

고구려 역사의 부활을 꿈꾸며 / 최병우

시육지 2018. 10. 7. 22:10




고구려 역사의 부활을 꿈꾸며 / 최병우

 

20189월에 화성문화원 주선으로 고구려 유적답사를 하였다. 일정에 따라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끊어진 압록강 철교 위에서 강 건너 북한의 모습을 보았다. 작은 물도랑 건너 지척이 북한 땅인데 철조망에 막혀 밟아볼 수 없었던 것이 매우 아쉬웠다. 이성계가 회군했던 위화도도 가까이에서 보았다. 집안(集安)에 자리한 옛 고구려의 무너진 국내성 성터와 광개토대왕비, 장수왕 능도 답사하였고 백두산에 올라 천지도 보았다.

그러나 여행의 설렘과 즐거움도 잠깐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왜곡된 역사를 접하는 순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고구려 역사를 이렇게 심하게 왜곡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과 정치인들은 무얼 했단 말인가? 이대로 두면 안 된다. 바로 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한사람으로서 이 안타까운 사실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도대체 동북공정이 무엇인가. 다음 백과에 의하면 현재 중국의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다. 그러므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도 또한 중국의 역사다. 따라서 고구려를 고대 중국의 지방 민족 정권으로 주장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동북공정은 광활한 동북 3(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내가 답사한 곳은 일부 지역에 불과하여 전체를 알 수는 없다. 답사 2일째 박작성을 답사했다. 이성은 단동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15Km 떨어진 압록강 변의 호산 지역에 있다. 여기에서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곳 역시 동북공정을 통하여 고구려 역사가 얼마나 심하게 왜곡되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지 안내원은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다. “이 성의 이름은 호산장성이고 1990년대에 복원되었으며 만리장성의 동단이다. 그리고 공안의 감시 때문에 더는 설명할 수 없다.” 어이가 없어 문화원에서 제공한 안내 책자를 꺼내 보니 고구려의 박작성이 분명한데 이름을 호산장성이라 바꾸고 만리장성의 동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곽에 올라 자세히 살펴보니 복원된 것이 분명하다. 고구려 옛 성의 흔적을 없애고 그 위에 명나라식으로 성을 축조하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화살 사격 대도 모두 중국 방향이 아닌 고구려 방향인 압록강 쪽으로 돌려 복원시켜 놓았다.

 

박작성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자. 한국민족문화백과사전에 의하면 삼국사기에 기록된 박작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 태종이 645(보장왕 4)에 고구려 국경 여러 곳을 대규모로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그로부터 3년 후 전함과 3만여 군사를 이끌고 박작성을 공격하였다. 이때 박작성성주 소부손(所夫孫)이 일만 명의 군대로 대항하여 성을 지켰고, 고구려 장군 고문(高文)이 오골성(烏骨城)과 안시성(安市城)의 군대 삼만 기를 거느리고 구원하였다.”라고 한다. 이렇듯 박작성은 고구려의 성이 분명하다.

 

중국은 1990년부터 이 성을 발굴하였다. 그때 고구려의 옛 석벽과 돌로 쌓은 우물 등을 대거 발견했지만 모두 제거하고 명나라식 벽돌로 축성을 한 것이다. 그리고 호산장성이라고 이름을 짓고 만리장성의 동단 즉 장성의 시작점이라고 주장하며 그 거리를 늘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주장을 막아야 한다. 왜냐면 지금 당장이야 호산장성이 가짜라고 항변할 수 있지만, 십여 년 후면 그 가짜가 진실이 되고 백 년 후면 진짜 역사로 둔갑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주변에 흔적으로 남아있는 박작성터는 완전히 없어지고,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어난 호산장성까지라고 믿게 될 것 아닌가.

 

중국은 만리장성의 길이를 계속하여 늘리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하여 황원갑 역사연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국은 고구려사와 발해사 등 우리나라 고대사를 탈취하려고 역사를 왜곡하기 위해 만리장성의 길이를 날조하고 있다. 그동안 그들은 동쪽의 하북성 산해관(山海關)에서 서쪽의 감숙성(甘肅省) 가욕관 까지 이어진 6,300Km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박작성(泊灼城)을 만리장성의 동단으로 편입하면서 길이를 8,800라 주장하고 있다. 그 후 다시 옛 고구려와 발해 영역이었던 길림까지 만리장성이 연결되었다며 총 길이를 약 2라고 확장 날조 발표하였다. 그리고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가 모두 중국의 영토였고, 이곳에 세워졌던 나라는 모두가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겉으로 나타난 것일 뿐 진짜 속셈이 따로 있음을 알고는 입이 열리지 않았다. 중국사의 뿌리가 한국사보다 짧아 이를 왜곡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우실하 교수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에 서술된 아래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것이 자명하다.

 

우 교수는 중국의 동북지역이 중원의 문명보다 뒤 쳐지지 않았다는 것은 명확하다. 또 중국 동북지역의 문명이 중원의 문명을 선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중국사의 발단은 황하 문명설이 주류였다. 그러나 요하 유역에서 빗살무늬토기와 비파형 청동검 등 고조선 문명의 유물이 대거 출토되었다. 이는 고조선의 요하 문명이 중국의 황하 문명 보다 약 1,000년이나 앞섰다는 움직일 수 없는 반증이다.”라고 말한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최근 황하 문명보다 빠른 요하 문명을 중화 문명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다. 보잘것없다고 경시했던 동이족의 요하 문명을 지금은 중국 문명의 시발점으로 보기 시작했고, 이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요하 문명을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보다도 오래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임을 밝히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이렇듯 중국이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는 밑바닥에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과 역사 패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늦지 않다.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밀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사학계도 분발해야 한다. 학교나 각 교육 단체에서는 고구려 역사 탐방을 통해 역사교육을 철저히 하여 선대들의 역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지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고조선 이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족이 고구려, 백제, 신라로 갈리었던 때도 있었다. 어떤 면에서도 분열은 좋지 않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민족은 어쩌면 한국과 북한 그리고 옛 고구려라는 새로운 삼국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 같아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이제 북미협상, 남북협상이 이어지며 새로운 물결이 조성되고 있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더욱더 지혜롭게 강인한 우리 민족의 저력을 온고지신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압록강 건너 신의주에서 떠오르는 태양

압록강 철교

신의주 공장

북한의 어민들

북한의 공장

                                북한의 산야 옥수수 재배

                        박작성 모습(화살 사격대가 고구려 쪽으로 축성됨)

                                                     도랑 건너 눈 앞의 북한 땅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 능

장수왕 능

백두산 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