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행정리후)

우렁각시 / 최병우 - 수필

시육지 2018. 10. 21. 01:25


우렁각시 / 최병우 - 수필

 

 

우렁이에서 나온 처녀가 총각을 위해 몰래 밥을 해 주고 간다는 우렁각시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바로 내가 그 주인공인 것 같다.

 

삼복 한낮 더위 피해 새벽기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서너 시간 동안 아들네 식당 앞 텃밭에서 김을 매었다. 풀이 무성하여 참깨밭 고랑인지 두둑인지 구별이 안 된다. 그러나 농사용 방석 깔고 땀방울 뚝뚝 흘리며 김매고 뒤돌아보니 기름칠한 것 같이 매끈하다. 나도 모르게 손이 기름이구나!”라는 탄성이 나왔다. 농부들의 마음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흡족한 마음에 때가 기울어 허기지고 힘든 것도 잊어버렸다.

 

얼마 후 큰아들 내외가 차를 타고 점심 영업시간에 맞춰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늦게 출근하여 짧은 시간에 손님 맞을 준비를 하다 보니 부모가 텃밭 농사일하는 모습이 보일 리 없다. 아예 신경도 안 쓴다. 그러나 식자재로 저네들 쓰라고 가꾸는 농작물인데 남의 일처럼 외면해 버리니 속만 타들어 갔다. 부모의 수고를 이리도 못 알아주는가.

 

견디다 못한 아내가 자식 다 소용없다고 투정하니 덩달아 나도 마음이 섭섭해졌다. 한참 동안 마음 삭이며 긴 한숨을 내 뿜었다. 그때 갑자기 옛 부모님 생각이 떠올랐다.

 

형님 내외가 농번기에 농사 제쳐놓고 막무가내로 여행 떠날 때 속마음 감추시고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던 부모님, 아들 없는 동안 자식 탓하지 않으시고 묵묵히 농사 돌보시는 그 모습이 파도처럼 밀려온 것이었다. 눈앞에 어른거리며 오랫동안 머문 그 잔상은 속 좁은 내 찬 마음을 살그머니 녹여버렸다. 그리고 나도 어느새 그런 우렁각시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