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풀이 / 최병우
이름 풀이 / 최병우
어떤 사물에 이름이 붙여지면 그로 인해 의미가 생기고 그에 따른 가치도 인정받게 된다. 예를 들어 애완동물은 이름을 붙여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지만, 사육장에서 대량으로 기르는 동물은 그냥 “개 또는 고양이”로 불릴 뿐이다. 이렇듯 이름은 그 사물에 대한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이름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사람에게는 누구나 이름이 있고 그 이름으로 불린다. 호칭의 수단뿐만이 아니라, 그 존재가 지닌 의미나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내 이름이 지닌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해방되던 해에 십 남매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그때는 생활이 가난했고 의술마저 뒤처져 많은 아기가 출생한 후 한두 해 사이에 사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래서 이름도 없이 애칭으로 부르다가 죽지 않으면 뒤늦게 호적에 올리곤 했다. 내 이름도 그렇게 지어진 게 분명하다. 일 년 늦게 아버님이 내 이름을 “최병우(崔炳佑)”로 지어 출생신고를 하였으니 말이다.
왜 내 이름을 “최병우”로 지으셨을까? 진작 아버님 생전에 여쭈어봤으면 궁금할 것도 없을 텐데 몹시 아쉽다. 알아볼 만한 지인들도 이미 세상에 없어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추론하여 본다.
첫 글자“최”는 성씨, 두 번째“병”이 돌림자이니까 결국 끝의“우(佑)”가 순수한 내 이름인 셈이다.
내 이름“우(佑)”자의 뜻은“도움”이다. 도움을 준다는 건지, 받는다는 건지 확실히 모르지만, 천우신조(天佑神助) 같은 고사성어를 보면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름 같이 지금까지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어릴 때 생각만 해도 그렇다. 내 밑에 여동생이 출생 후 몇 개월 만에 죽었기에 내가 막내로 자랐다. 너무 가난하여 어머니는 제대로 음식을 잡숫지 못하여 아예 젖이 나오질 않아 대신 보리밥을 씹어 먹여 나를 키웠다고 한다. 결국에는 영양부족으로 삐쩍 말라버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애물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달랠 길 없는 어머니는 십리 길 무당집을 찾아가 아들의 목숨을 위해 무당을 나의 수양어머니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무당을 집으로 데려와 굿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 결혼 전까지 철이 안 들어서였을까 나는 내게 어떤 것이 부족한지조차 모르고 지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내게 부족함이 너무 많다는 것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혜와 판단력이 남보다 훨씬 뒤처짐은 물론, 눈치는 아예 형광등 수준인 채 살아왔다. 이런 나의 부족함을 메워줄 누군가의 도움이 오래전부터 필요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도움”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잘되도록 힘을 보태거나 돌봐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행위다. 이런 도움의 과정에서 제일 먼저 이루어지는 것이 만남이고, 이 만남이 바로 도움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는 이 만남을 통하여 도움을 받은 사례가 많다.
첫째로 아내와 만남이 그것이다. 내가 보물 같은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열아홉 살 때 평택 친척 집에 갔다가 동생의 친구 모임에 가게 됐다. 거기에서 아내를 잠시 만나게 됐는데 뛰어난 지혜와 초롱초롱한 눈, 곱고 명료한 목소리에 난 그만 정신이 몽롱했다. 그때 십육 세였던 아내의 영롱한 모습은 나를 한없이 부푼 꿈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백발이 된 지금까지 동고동락하며 잘살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외모를 몹시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살다 보면 그것이 그렇게 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평온할 때보다 불현듯 다가오는 고비를 맞을 때 이를 극복해 내려는 굳건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한마음으로 둘의 지혜와 성실함을 엮어내야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해 내려는 끈질긴 인내가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외모는 위기에 큰 힘이 되는 요소라 할수 없다.
솔직히 나는 아내에 비하면 지혜와 결기 면에서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더구나 눈치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라는 표현도 지나치지 않다. 반면 이해하는 것이나 배려하고 인내하는 데는 내가 좀 나은 편이다. 부동산 거래나 대인관계 혹은 가정사를 다루는 아내의 지략과 솜씨는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0대 초반에 닥쳤던 가정의 고비를 극복한 아내의 결기는 실로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러기에 지금도 아내의 말이면 수긍하는 편이다.
아내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부부 중 남편이 우둔하여도 아내가 지혜로우면 가정이 일어서지만, 반대로 남편이 지혜로워도 아내가 우둔하면 그 가정은 무너진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 사실 맞는 말인 것 같다. 지금껏 내게 부족했던 지혜와 근면까지도 아내가 대신 채워 준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니 이 또한 도움을 받으며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두 번째 만남은 인문학이다.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 중 인문학반이 있다. 나는 칠 년간 담당 지도교수의 강의를 통하여 내 인생이 새롭게 바뀌었다.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경륜과 지혜가 나의 자존감이고, 그것들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년은 관리하기에 따라 아름다워지기도, 슬프고 고달파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인문학을 통하여 자신을 성찰하며 여생을 맑은 영혼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당당한 시니어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지금까지 내 이름의 “우(佑)”자가 지닌 의미, 즉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아내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 분명 사실이고, 인문학 수강을 통하여 새로운 노년을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 사실이니, 나는 틀림없이 이름의 의미대로 도움을 받으며 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이름을 부모님이 잘 지워준 것일까? 당연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의미를 실현하려는 노력에 방점이 찍혀야 할 것이다. 이름만 믿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이름만 멋지고 음식은 맛없는 식당과 다를게 무엇이겠는가.
이런 맥락에서 이제부터 나는 도움받은 것을 발효하고 숙성한 만큼 아름답게 베푸는 것으로 내 이름을 값지게 승화하여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