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효심
아버지의 효심
내가 열두 살 때 아버지는 할머니와 생사의 이별을 하셨다.
삼베로 지은 바지저고리 입으시고, 행전 치시고,
삼베 두루마기에 요질 매시고,
두건 위에 굴건 얹어 수질로 고정하시고,
짚신에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으셨다.
스물셋에 수절하시고 온갖 고초 겪으시며
아들 하나 고이 키우셨던 할머니는
그 아들을 열여섯에 장가들여 손자 셋, 손녀 셋을 얻고
금지옥엽으로 키워 주셨다.
할머니 말씀이라면 단비 흡수하는 들녘 같았던 아버지는
시집살이로 힘들어하시는 아내를 구수하게 달래며,
할머니와 한마음으로 사셨다.
할머니를 꽃상여 태워 보내시던 날,
아버지는 하늘이 무너진 듯 슬피 우셨다.
그 슬픔이 볼에서 흘러 지팡이를 타고 내려 바닥을 적셨다.
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평생 땀 흘려 마련한 계향리 동산!
그 동산으로 떠나는 상여 앞에서
아버지의 마음은 요령 소리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십리 길을 걸어서 양지바른 동산 위에 할머니를 안치하실 때
아버지는 온몸에 가득했던 설움과 아픔을 쏟아내며
할머니를 보낼 수 없어 통곡하셨다.
취토하실 때는 생사의 갈림에 어쩔 수 없어 그만 주저앉아버리고 마셨다.
간신히 고운 흙을 담아 세 번 던지시더니
젖먹이처럼 한없이 슬피 우시며 어머니를 부르고 또 부르셨다.
홀몸으로 온 힘을 다해 키워낸 아들이건만
아들은 만분의 일도 보답 못 해 사무치는 아쉬움을 목 놓아 토해내셨다.
아버지의 사모곡은 그 후도 그치지 않고
하염없이 이어졌던 것을 나는 오랫동안 보았다.
아버지의 효심을 본받아야 할 나는 근심거리가 된 적도 많으니,
이제 와 후회는 그리움이 되었다.
젊은 시절 영주에 살 때,
부모님 생각 전혀 안 하고 오랫동안 편지 한 장 드리지 않았더니
부모님 재촉에 그 먼 길을 형님이 찾아오셨다.
아! 내 존재가 곧 부모님의 분신이거늘
이것을 잊고 지낼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제는 아쉬워할 것만 아니라 나도 아버지의 그 사랑을 따라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