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육지 2021. 4. 14. 08:34

000. 서문

 

주변에서 노인들이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희로애락을 짜임새 있게 감동적으로 엮어 출간한 책들을 보면서 나는 몹시 부러움을 느껴왔다. 왜냐하면, 편지 몇 줄 쓰다가 막혀 그만둘 만큼 글 쓰는 재주가 내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변고가 생겼다. 2014년 화성시 남부노인복지관 인문학반에 등록하여 수강하던 중 글쓰기 과제가 있었다. 몹시 부담스러워 차일피일 미루다가 궁여지책으로 고생하며 살아온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며 글을 써서 가까스로 제출하였다. 그런데 강사이신 박요섭 교수님께서 백발을 흑발로 염색하듯 나의 글을 말끔하게 교정하여 멋지게 낭독하셨다. 순간 듣고 있던 수강생들의 박수 소리는 물론 나 자신도 글쓰기의 묘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동심으로 돌아가 고향의 옛 모습과 부모님을 생각하며 글을 썼고, 그때마다 스스로 감동에 빠지기도 하고 불효했던 자신이 부끄러워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변심하여 수차례 글쓰기를 포기하려고도 했다. 그럴 때 박교수님은 일본의 시바타도요 할머니는 9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글을 써서 책을 냈다며 혼돈과 정체에 빠진 내게 희망과 열정을 부어주었다.

 

이러한 가운데 어릴 적부터 기억을 더듬어 쓴 시와 수필이 제법 쌓이게 되었고, 이를 세대별로 엮어 출판하게 된 것이다. 나는 글을 쓰면서 무한한 행복을 느꼈다. 흔히 칠십 전후 십여 년을 인생의 황금기라 하는데, 어쩌면 내가 지금 그때를 맞고 있나 보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할 일도 생기고, 그 하는 일을 통하여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철학자 칸트는 사람이 행복하려면 할 일이 있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앞날에 희망이 있어야 한다. 만일 세 가지 중의 하나가 없다면 스스로 채워서 불행해지는 것을 예방하고, 행복해지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위 조건 중 현재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뚜렷한 희망과 집중할 만한 일이 없는 것이다. 왜일까. 그건 늙었다고 생각하는 부정적인 관념 때문이다. 나는 이런 관념을 진작 버렸어야 했다. 다행히 늦게나마 인문학 수강을 통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인 사고와 아울러 꿈과 희망을 찾게 된 것은 행운이다.

 

꿈을 가진 노인은 결코 늙은이도 무기력한 노인도 아니다. 꿈과 희망이 있는 노인은 바로 행복을 만드는 사람이라 한다. 헬렌켈러는 희망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만져질 수 없는 것을 느끼고, 불가능한 것을 이룬다.’라고 했다. 모세는 80세에 자기 민족을 이끄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했고, 사도 요한은 90세에 환상을 받아 계시록을 기록했고,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삭을 낳고 복의 근원이 되었다.

 

나이는 들었어도 나는 꿈과 희망을 품고 여생을 보내려 한다. 가정과 일에 매여 엄두도 못 내었던 자신만의 생활을 찾아 무의미하게 보내온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꿈꾸며 값지게 살련다.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얻은 경륜과 지혜가 노인의 자존감이고, 그것들이 진귀한 보석임을 확신하고, 이 보석이 젊은이와 또 다른 노인에게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련다

 

이런 맥락에서 생소하고 어려워 꺼려왔던 글쓰기를 늦었지만, 끝까지 계속할 것이다. 행복은 무언가 집중할 일을 만들어 행하므로 느끼는 부드러운 황홀감이라 한다. 이런 황홀함이 노년인 내게 지금 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겐 소망이 있다. 훗날 세상을 떠나면 천국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줄 분이 있기에 살아 있을 동안 하늘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련다. 끝으로 글쓰기 지도와 감수를 통하여 도움을 주신 박교수님과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2021, 최병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