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초년))

우리 집은 솜틀집

시육지 2017. 6. 20. 11:54




우리 집은 솜틀집 / 최 병 우





우리 집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솜틀집이었다.

건너 방 툇마루 옆 헛간에

발로 밟아 돌아가는 솜틀이 있었다.

 

아버지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일 하시다가

겨울이 시작되면

햇솜, 묵은 솜, 가리지 않고 솜을 트셨다.

 

굳은 솜이 단단히 뭉쳐질 때면

솜틀의 톱니 망가질까 멈춰 세우시고

뭉쳐진 솜방망이를 빼내곤 하셨다.

 

틀어진 솜은

솜사탕처럼, 고운 눈처럼

포근한 이부자리가 되어준다.

햇솜은 뽀얗게,

묵은 솜은 어둡게 날려

소복이 쌓인다.

 

아버지는 쌓인 솜을

대나무채로 넓게 들어내어

툇마루 돗자리 위에 옮겨놓고

솜 주인이 원하는 크기로 만들어 개셨다.

 

아버지는 솜틀을

멈추지 않게 하시려고

늦둥이 나를 불러

솜틀을 돌리라셨다.

 

큰 바퀴를 왼손으로 잡아

힘껏 앞으로 돌려 시동 걸고

발로는 계속 폐달을 밟아야 한다.

 

     한꺼번에 많은 솜을 놓으면 뭉치니

손을 자주 놀려 부드럽고 넓게 펴 놓으라 하셨다.

작은 키 때문에 디딤 위에 올라서서

일을 하노라면 무척 힘들었다.

 

당장 그만 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참고 일하노라면 아버지가 오셔서

나가 놀라고 하실 것 같아

계속 폐달을 밟고 솜도 자꾸 펴 넣었다.

 

농한기라 남들은 다 쉴 때도

우리집에서는 솜틀이 쉬지 않고 돌았다.

솜을 맡긴 사람들의

포근한 이부자리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얀 솜을 트셔서

보자기에 묶어 건네주고도

아버지는 돈 받으실 땐

헛기침하시면서 겸연쩍어하셨다.

 

그리곤 저녁이 되면

아버지는 초저녁부터 등잔불 끄시고

귀찮아하는 나를 꼭 껴안고

괜히 얘기를 붙이셨다.

 

지금도 그 옛날 틀었던

솜 같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주마등처럼 옛날 일들이 스쳐 지나고

하늘에 계실 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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