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수원 서울)

당신에게

시육지 2019. 10. 10. 01:51


당신에게 / 최병우

 

 

젊은 날 당신의 모습이

아스라이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백합 향기가 되어 눈발처럼

내 마음에 소복소복 다가와

꽃보다 곱게 황혼을 물들인다.

 

넓고 비좁은 골목길에서

딱지 하나 더 가져볼 생각에

제 주장이 옳다고 우겨대던

악동같이 가시 돋친 말로

이겨 먹으려고 했던 그 순간들

 

고개 숙인 젊은 가장의

까만 밤하늘에 불현듯 떠오른

푸른 별빛이 조용히 모여들어

한 아름 밝은 마음 가져다주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진 광장

 

그것은 당신이 내 마음에 심어놓은

사랑이었고, 따뜻한 동행이었으며

가을 들국화같이 고운 보랏빛 미움,

이 모든 것이 하나둘 차곡차곡 물들어

올 시월 그토록 아름다운 단풍이 들게요.

 

 

~단상~

 

고등동 13평 집에서 어린 두 아들과 큰 조카까지 거느리고 고생했던 당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고맙단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당신을 탓하며 사소한 일로 다투었던 일 당신도 생각나지요? 그때 젊은 당신의 모습이 백합꽃 되어 아스라이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눈발처럼 소복소복 내 마음에 다가와 고운 향기로 일흔다섯 황혼을 곱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밴댕이 소갈딱지같이 좁은 속으로 참을성 없이 분노를 화통처럼 토했고, 엄나무 가시처럼 날카로운 손끝으로 당신 마음에 깊은 아픔의 상처를 주었던 것 미안해요.

 

그렇게 열리지 않을 듯 굳게 닫혔던 내 옹졸함이 철도병원에서 예배를 마친 후, 얽힌 실오라기 풀리듯 환하게 열렸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까지 유난히 빛났답니다. 용산역 광장에 이르러 바라본 밤하늘의 별빛은 인파와 조명을 뚫고 내 마음에 평화와 긍휼을 가득히 가져다주었습니다.

 

나도 동양인이라 표현을 조용히 하는 게 미덕인 줄 알지만, 이젠,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과 마주하며 아쉬웠던 추억의 순간들을 황혼 노을빛에 내려놓고 감춰졌던 사랑을 내보이며 긴 호흡을 마음껏 내쉬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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