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행정리후)

참된 헌신을 생각해보며

시육지 2017. 5. 4. 22:56

             

 

전라남도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던 세월호가 3년 만인 2017323일에 우여곡절 끝에 인양되었다. 인양 18일 만에 반 잠수정에 실려 목포 신 항 부두에 상륙하였다. 지금도 선실 어딘가에 묻혀있을 미 수습 자들의 흔적을 찾고 있다. 속히 수습되어 가족의 품에 안기게 되기를 기도한다.

 

2014416일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을 포함해 476명의 승객을 태우고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항해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해 304명이 사망하였다.

 

이 때 많은 학생을 살리고 숨진 단원고 최혜정 교사와, 박지영 세월호 승무원의 희생정신이 미국에서도 높이 평가를 받아 201538일 미국 공익재단(Four chaplains memorial foundation)으로부터 최고상을 받았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 재단은 1943년 독일 군에 피격된 미국 군함 도체스터에서 자신들의 구명조끼를 병사들에게 벗어주고 침몰하는 배와 운명을 같이한 4명의 군종장교(가톨릭 신부, 유대교 랍비, 개혁파 목사, 감리교 목사)를 기리려고 1951년 트루먼 대통령이 설립한 재단이다.

 

이 재단이 주는 골드메달은 최고상으로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트루먼, 아이젠하워, 카터, 레이건 등 4명이 수상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숨진 두 사람을 대신해 어머니들이 참석해 상을 받았다.

 

최혜정 선생님은 다른 승객들에게 위험을 알리려고 아래로 내려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승무원 박지영 씨는 은 모든 승객이 탈출할 때까지 나가지 않겠다며 승객들을 탈출구로 밀어 내다가 자신은 물속에서 희생되고 말았다.

 

최혜정 선생님의 어머니 송명순 씨와, 박지영 씨의 어머니 이시윤 씨는 수상 소감을 밝히는 중에도 딸을 잃은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울먹거렸다. 이들은 함께 읽은 소감문에서 "딸들이 남긴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평생 남들을 위해서 봉사하며 살겠다."고 말했다.

 

나는 위의 기사를 접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대하여 먼저 존경을 표한다. 그리고 새삼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느 누가 자기 생명 귀한 줄 모르고 남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는가. 만약 이런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나는 과연 이들과 같은 용단을 내릴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며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렇게 위대한 희생은 못되어도 작게나마 흉내라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흉흉한 세상이라지만 이렇듯 고귀한 헌신은 어두운 이 사회를 밝게 비춰주고 있다. 헌신은 어떤 일이나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지 않고 몸과 마음을 바쳐 있는 힘을 다함이라고 한다. 이 뜻을 곱씹으며 내 자신을 성찰해보니 지금껏 입으로는 헌신에 대하여 쉽게 말하곤 했지만, 모두가 허언이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정작 실행에 옮기려면 머뭇거렸음이 자명하다.

 

헌신이 내게 익숙지 못하고 거북했던 이유는 나의 이기심과, 소극적이고 형식적인 마음가짐 때문이라 생각된다. 어릴 때부터 이타적 삶에 대하여 교육받지 못했고 이에 따라 습관이 안 돼서 그런 것 같다.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헌신은 권위와 역할에 의해 의무적이거나, 옳게 여겨져 일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런 의무와 동기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위대한 헌신은 기쁨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 헌신은 기쁨과 자발적인 마음에서 출발해야한다. 똑똑한 사람이 성실히 노력하는 사람을 넘을 수 없고, 성실히 노력해도 그 일을 즐기며 하는 사람을 따를 수 없다한다. 결국 기쁨 속에 자발적으로 하는 헌신을 뛰어넘을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기쁨과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무엇일까? 바로 받은 은혜와 사랑의 풍성함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 이웃으로부터 받은 사랑, 우리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깨닫게 되면 이타적인 사랑은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받은 자만이 사랑을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았다 해도 서두르다보면 실패 할 수 있으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전혀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 처음부터 무리해서 운동을 하면 탈이 날 수도 있다. 점진적으로 운동의 수준을 높여가야 한다. 더디지만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고 몸이 적응되면 다음 단계로 높여가야 하듯이 헌신도 안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쇄신하며 계속해야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그러므로 헌신이 몸에 익숙해지고 자기 옷처럼 여겨지도록 지속적으로 연습하여야한다.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것과 상관없이 서운해 하지 않고 불순한 마음을 품지 않으며 기쁨 속에 자발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세월호에서 생명을 바쳐 희생했던 이들처럼 우리도 참된 헌신에 입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