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병 우
십사 년 전 결혼식을 며칠 앞둔 둘째 아들이 느닷없이 내게 머리염색을 권했다. 시골에 내려와 살고 있는 나의 행색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마음에 걸렸나보다. 아니 어쩌면 며칠 후 결혼식 날 하객들의 눈에 비칠 아버지의 모습이 맘에 걸렸는지도 모른다. 많은 생각 끝에 염색을 하기로 결심했다. 결혼식 하루 전날 텃밭을 살핀 후 단골이발소를 찾았다.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니 정수리의 머리숱이 젊었을 때보다 완연히 적었다. 머리 감을 때마다 머리칼이 빠진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오십 후반 내 나이엔 탈모가 좀 빠른가 싶었다. 숱이 많아 귀찮아했던 젊은 시절이 그리웠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아! 옛날’ 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평상시 모습대로 이발소에 간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면도는 물론 세안까지 해주기 때문이다. 그 날도 이발사는 내 머리를 적당히 자르고 면도를 끝내더니 이윽고 능숙한 솜씨로 검은색 염색약을 혼합하여 머리카락에 꼼꼼히 발랐다.
얼마가 지났을까. 이발사의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세면대로 자리를 옮겨 지하수로 머리를 여러 번 감았다. 의자에 다시 앉아 머리를 말리고 빗은 후 앞의 큰 거울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세상이 바뀐 것 같은 경이의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 이게 웬 일인가! 거울 속에 웬 젊은이가 미소를 짓고 앉아 있지 않은가.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수북한 수염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꽤 나이 들어 보이던 사람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사십 중반의 말끔한 젊은이가 신기한 듯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지 않은가.
이발하고 면도하면 오년 정도 젊어지는 느낌은 평상시에도 가져보았지만 염색을 하면 십년이나 추가로 젊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합쳐서 십 오년이 젊어진 채 집에 오니 아내가 젊은 오빠가 되었다며 함빡 미소를 지었다.
이튿날 결혼식장엘 갔다. 혼주로서 정장차림으로 신랑인 아들과 함께 하객을 맞았다. 젊어진 아버지가 멋있어 보였던지 결혼식 내내 아들은 싱글벙글했다.
며칠 후 신혼여행 다녀온 아들에게 젊어진 내가 네 체면을 세워줘서 그렇게 싱글벙글했냐고 물었다. 빈말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해주었으면 좋았으련만 야속하게도 아들 녀석은 제 색시 때문이라고 대답해서 좀 서운했다.
얼떨결에 머리염색을 한 그날 이후 나는 머리염색 예찬론자가 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목욕 자주하여 남에게 냄새 풍기지 말고, 이발, 면도 후 깔끔한 차림으로 외출하여 남에게 불쾌감을 주지 말라는 아내의 잔소리에 나는 이미 길들여졌다.
그런데 염색으로 뜻밖의 젊은이가 된 나를 보았으니 그냥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아내가 바라는 젊은 외모를 위해 염색필수라는 꼬리표 까지 달게 되었다.
십 사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잔소리는 여전하다. 어제도 아내가 염색을 해 주었다. 얼마 안 남아 있는 정수리 머리카락과 그래도 좀 남아있는 희끗한 양쪽 옆 머리카락에 십 수 년 째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있다.
아내는 내 머리카락에 염색을 해주면서 “머리가 가늘고 힘이 없다”는 묘한 푸념을 하였다. 듣기 싫지 않은 그 푸념과 함께 해주는 아내의 염색 자원 봉사에 힘입어 나는 십 오년을 젊게 사는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
나는 희망과 행복이 대단하고 엄청난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작고 소박한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참되고 아름다운 행복이고 희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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