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행정리후)

잃어버렸던 상품권을 찾아서 얻는 기쁨과 교훈

시육지 2017. 2. 22. 10:14



잃어버렸던 상품권을 찾아서 얻는 기쁨과 교훈

                                                                        

                                                                                                               최병우

 

집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큰 아들이 경영하는 식당이 있다. 그 마당 끝에 드럼통이 있는데, 공해 없는 일반 쓰레기들은 여기에서 소각한다. 아파트에서 쓰레기를 분리수거를 하지만, 폐기된 서류나 영수증 등은 꼭 이곳 식당 쓰레기통으로 가져다가 소각한다. 그저께 종이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갖다버렸는데, 봉투가 터져서 통 안은 온통 종이 세상이었다.

 

아주머니! 그 쓰레기에 불붙이지 마세요!” 이른 아침 전화기에 대고 나도 모르게 고함을 질렀다.

 

이른 아침 식당에 숙식하고 있는 종업원 아주머니에게 전화로 쓰레기 태웠냐고 물었더니 지금 막 태우려 한다기에 나도 모르게 외친 고함이었다.

 

사업자는 6개월 간격으로 부가가치세 신고를 한다. 그 때마다 서류정리를 해 왔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세금계산서나 각종 영수증을 한 두 시간 정도 분류하는 것인데 우리 아내는 나를 차분하고 꼼꼼한 남편이라고 한다. 칭찬인지 핀잔인지 모르지만 그렇게 45년을 살아왔기에 익숙하다.

 

방구석에 놓인 플라스틱 수납장 서랍엔 각종 서류가 들어있다. 6개월 간 생활하면서 모은 각종 영수증, 상품권, 응모권, 지로통지서 등 그 때마다 생긴 것들을 정리도 하지 않은 채 아무렇게 넣어두었기에 많지는 않지만 좀 복잡하다. 오늘도 방바닥에 앉아 서랍을 꺼내 놓고 돋보기를 쓴 채 차분하게 잘 분류하여 정리를 마쳤다. 필요한 것은 골라 보관하고 나머지 쓸모없는 것은 태우려고 우선 거실에 있는 작은 쓰레기통에 시원하게 구겨 넣었다.

 

이틀이 지난 아침이었다. 오늘은 온천욕을 마치고 농협마트에 들려 쇼핑을 하기로 했다. 아내가 작년에 쓰고 남은 상품권을 챙겨보라 말하기에 엊그제 서랍 정리할 때 본 것 같아 찾아보니 없다. 이런 것 보관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 아내가 가끔 말하는 차분하고 꼼꼼한 남편이란 핀잔 같은 칭찬에 꼼짝없이 내 책임이 되 버렸다.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승용차를 다 뒤져도 없다. 혼자서 요란법석을 떠는 내 모습을 보고 눈치를 챘는지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죄진 사람처럼 머쓱하며 상품권이 없어졌다고 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다 찾아봐도 없다. 왜 죄 없는 그 서랍을 열 번도 더 열어 봤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기대해 보는 것은 거실에 있는 쓰레기 통 뿐이다. 나이 먹어 분별력이 떨어져 잘못 분류하여 그 곳에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기대를 하고 열어보았다. 그런데 가득 차 있어야 할 쓰레기가 하나 없이 깨끗하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그저께 식당에 있는 쓰레기통에 가져다 버렸다한다. 벌써 이틀이 지났으니 분명히 식당 아주머니가 태웠을 것이라 생각에 눈앞이 아찔해 졌다. 전화를 해보니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는다. 마음이 조급해서 자동차를 타고 가보려다가 그만두고 집안 구석을 더 찾아보며 계속 전화를 했다.

 

순간적으로 성경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느 여인이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애타게 찾는 이야기다. 한 드라크마는 무게가 4.3g의 고대 그리스 은화인데 장년 하루 품삯이라 한다.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상품권과 값어치가 비슷한 것 같다. 그 이야기의 내용은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어서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부지런히 찾다가 끝내 찾아낸 후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잔치하며 즐겼다는 내용이다. 한 드라크마는 값어치로 따진다면 사실 별로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 관습에서는 약혼식 때 남자 쪽에서 여자에게 열 드라크마를 예쁜 줄에 꼬아서 선물하고 선물을 받은 신부는 그것을 머리에 장식하여 결혼식장에 들어갔다고 한다. 만일 그 중에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파혼까지 가는 매우 귀한 증표였다 한다. 그러니 그 중에 하나를 잃었으니 이 여인은 꿈속에서라도 잃은 그 것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반면 잊혀 진 드라크마의 입장에서 보면 누군가 찾아준다는 것에 얼마나 행복했을까? 여인이 빗자루로 마당과 부엌과 온 집안을 쓸면서 열심히 찾다가 결국 자기를 찾아내고 기쁨의 탄성을 질렀고 또 잔치를 했다니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이 여자 주인공처럼 상품권을 찾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나는 찾았으니 좋고 그 상품권은 잊혀 진 처지에서 주인을 만났으니 좋을 것이 아닌가! 제발 식당 아주머니가 소각하지 않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전화 받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전화가 연결되었다. 다짜고짜로 물어보니 태우려 가는 중이란 것이다.

아주머니! 그 쓰레기에 불붙이지 마세요!” 고함에 가까운 외침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태우지 않은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이며 정신이 바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에 온천욕을 하기로 한 것이 생각나서 목욕 도구를 챙겨 식당 쓰레기통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종전 같았으면 이미 아주머니가 태워 없앴을 쓰레기가 이틀이 지난 채 신기하게도 그대로 있었다.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 못 태우고 조금 전 태우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아주머니와 그 말 못하는 쓰레기에게 까지 감사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 곳에 상품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윽고 널려진 종이 쓰레기를 뒤척여 보았다. 꾸겨졌지만 봉투에 담긴 16만 원 어치 상품권 7장을 어렵지 않게 찾았다. 수십억 복권 당첨된 사람의 마음이 이렇겠지 하면서 나는 기뻐 탄성을 지르는데, 아내는 나보고 칠칠치 못하다고 눈을 흘기며 비웃음으로 빈정댔다. 아내의 그 모습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계획대로 온천욕을 마치고 쇼핑대금 6만원을 상품권으로 기분 좋게 결재하고 집에 왔다. 그런데 문득 35여 년 전 농촌진흥청에서 과장으로 근무했던 지인이 복권 100만원에 당첨 되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최고 당첨금이 1억 원이니까 꽤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 분은 곧고 고결한 성품 탓에 허튼 소리를 별로 안했다. 그 부부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지만 남편이 들통을 내 버렸다. 입이 간지러워 말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직장에서 공개적으로 자랑을 했다한다. 상사인 그는 주위 성화에 못 이겨 한 턱 내느라 100만원도 더 들었는데 그래도 기뻤다고 말했다.

 

과장은 100만 원 들여 잔치를 했고 드라크마 찾은 여인도 잔치를 했다는데 나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어 아내에게 심중을 물으니 그 여자와 그 분이 잔치한 것은 돈의 가치로 보면 손해가 막심하지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었겠지요. 허지만 잔치는 뭘하다가 내 눈치를 보더니 그래요 당신 맘대로 해요하며 말을 돌렸다. “그래 그들처럼 나도 잔치해보자. 복권 당첨된 그 분은 억지로 한 턱 냈지만 나는 자발적으로 해 보자는 결심을 했다. 주인 잘 못 만나 잃어버려 태워 없어질 그 녀석이 애타게 기다리던 주인과 조우했으니 나머지 10만원으로 기쁨의 잔치를 꼭 해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금방 빗나가 일그러지고 말았다. 식당을 하는 큰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지금 바쁘니까 돈은 나중에 줄 테니 대신 식자재 좀 사다 달라는 것이었다. 곧 주문한대로 사고 보니 남아 있던 상품권을 주고도 돈이 모자랐다. 벌써 여러 번 이렇게 심부름해주고 돈을 받아본 일이 없기에 잔치고 뭐고 다 틀렸다 생각하니 너털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웃에게 잔치는 못했지만 그렇게 잔치하며 베풀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했던 이일로 인하여 구두쇠 같은 마음을 열어 이웃과 자식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한듯하여 감사하다.

 

100세 시대에 내 나이는 늙은이도 아닌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종이 쓰레기를 분류해야겠다. 마음 졸이며 목 등줄기 시근거렸던 일은 한 번이면 내게 족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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