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지은 원두막
최 병 우
해마다 아버지는
들녘 참외밭에 원두막을 지으셨다.
왼쪽은 고추밭, 오른쪽은 콩밭,
가운데가 참외밭이다.
참외밭은 모두 길게 세 두둑
각 두둑 가운데에 참외와 오이를
양쪽 머리엔 호박을 조금 심으셨다.
칠월이 되면 아버지는
호박넝쿨을 옆으로 걷어놓고
그곳에 원두막을 지으셨다.
투박하게 다듬은 밤나무기둥 네 개
서까래 네 개
광문 한 짝, 부엌문 한 짝
밀짚을 엮어 둘러 만든 뾰죽한 지붕
짚으로 틀어 만든 굵은 동아줄 여덟 개
꿰매지 않은 가마니 네 잎을
소달구지로 실어 오셨다.
기둥 네 개를 깊이 묻고
지붕을 높이 들어 올려 동아줄로 묶으셨다.
서까래 네 개를 어른 눈높이에 맞춰
네 기둥에 동아줄로 단단히 묶은 후
큰 문짝 두 개를 올려놓으셨다.
지붕추녀 네 곳에 가마니 달아매어
막대로 뻗쳐 놓으셨다.
그리고 사다리를 만드시고는
제일 먼저 아버지는
어린 나를 원두막마루로 올라가게 하셨다.
참외가 제법 커지면
제일 큰 호박참외 옆에 고사지내시고
밭 안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참외가 익으면
아버지는 제일먼저 할머니께 따다가 드렸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 생각에
농익고 무른 참외를 고르셨다.
아버지는
밭 밟으면 안 된다 하시면서도
원두막 지키는 나에게
배가 터질 만큼 잘 익고 맛있는 것 골라
먹으라고 주시고는
땡볕에 일만 하셨다.
방학 며칠 후
친척아이들이 잔뜩 와서 원두막에 오르면
원두막 바닥은 금방
아버지가 따다주신 참외껍질로 수북해졌다.
배불러 노래도하고 책도 읽지만
시원한 바람은 어느새 모두를 잠들게 했다.
비 오고 천둥칠 때 혼자 있으면
대낮인데도 정말 무서워
뻗쳐놓은 막대 치워 가마니 내리고
홑이불을 덮고, 눈을 꼭 감고, 귀도 막았다.
이럴 때면
아버지가 어느새 오셨는지 헛기침하시고
“나왔다”하시며 도롱이를 벗으셨다.
비가 그쳐 날이 들면
어머니가 가져오신 저녁 잡수시고
어두워지기 전에
어머니와 집에 같이 가라시고는
밤이 무서우실 텐데도
혼자서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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