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초년))

아버지가 지은 원두막

시육지 2017. 7. 15. 08:13

   

아버지가 지은 원두막


                                        최 병 우

 

해마다 아버지는

들녘 참외밭에 원두막을 지으셨다.

왼쪽은 고추밭, 오른쪽은 콩밭,

가운데가 참외밭이다.

 

참외밭은 모두 길게 세 두둑

각 두둑 가운데에 참외와 오이를

양쪽 머리엔 호박을 조금 심으셨다.

 

칠월이 되면 아버지는

호박넝쿨을 옆으로 걷어놓고

그곳에 원두막을 지으셨다.

 

투박하게 다듬은 밤나무기둥 네 개

서까래 네 개

광문 한 짝, 부엌문 한 짝

밀짚을 엮어 둘러 만든 뾰죽한 지붕

짚으로 틀어 만든 굵은 동아줄 여덟 개

꿰매지 않은 가마니 네 잎을

소달구지로 실어 오셨다.

 

기둥 네 개를 깊이 묻고

지붕을 높이 들어 올려 동아줄로 묶으셨다.

서까래 네 개를 어른 눈높이에 맞춰

네 기둥에 동아줄로 단단히 묶은 후

큰 문짝 두 개를 올려놓으셨다.

지붕추녀 네 곳에 가마니 달아매어

막대로 뻗쳐 놓으셨다.

 

그리고 사다리를 만드시고는

제일 먼저 아버지는

어린 나를 원두막마루로 올라가게 하셨다.

 

참외가 제법 커지면

제일 큰 호박참외 옆에 고사지내시고

밭 안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참외가 익으면

아버지는 제일먼저 할머니께 따다가 드렸다.

이가 없으신 할머니 생각에

농익고 무른 참외를 고르셨다.

 

아버지는

밭 밟으면 안 된다 하시면서도

원두막 지키는 나에게

배가 터질 만큼 잘 익고 맛있는 것 골라

먹으라고 주시고는

땡볕에 일만 하셨다.

 

방학 며칠 후

친척아이들이 잔뜩 와서 원두막에 오르면

원두막 바닥은 금방

아버지가 따다주신 참외껍질로 수북해졌다.

배불러 노래도하고 책도 읽지만

시원한 바람은 어느새 모두를 잠들게 했다.

 

비 오고 천둥칠 때 혼자 있으면

대낮인데도 정말 무서워

뻗쳐놓은 막대 치워 가마니 내리고

홑이불을 덮고, 눈을 꼭 감고, 귀도 막았다.

이럴 때면

아버지가 어느새 오셨는지 헛기침하시고

나왔다하시며 도롱이를 벗으셨다.

 

비가 그쳐 날이 들면

어머니가 가져오신 저녁 잡수시고

어두워지기 전에

어머니와 집에 같이 가라시고는

밤이 무서우실 텐데도

혼자서 주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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