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초년))

6.25 전쟁의 기억

시육지 2017. 7. 17. 19:47

  

6.25 전쟁의 기억


                                             최 병 우

 

19506.25전쟁

해방둥이인 내겐 그 때가 생생하다.

경기도 화성군 정남면 발산리 시골동네

전투지역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불행은

그 곳까지 찾아왔다.

 

칠월 초 오산 죽미령전투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 같은 포성으로 창문이 마구 흔들릴 때

겁먹어 무서워하는 나에게

두꺼운 솜 모자로 귀마개 삼아

이불 둘러 덮어 안방에 숨겨주셨던 어머니 모습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아버지만 남으시고

온 가족이 소 몰고 새미재로 피난하였다.

그러나 다음날 오후

포 소리 크게 들려 모두 호두나무 밑에 숨었는데

나무 바로위로 집채보다도 더 큰 군용기가 불붙은 채

낮게 날아가더니

소리와 함께 포탄과 소총탄 터지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미군용 수송기가 향남면 방울산에 추락한 것임)

 

짧은 피난생활

그곳도 불안하여 우리 집으로 되돌아온 얼마 후

조용했던 시골마을은 슬픔의 바다가 되었다.

우리 큰 형님 또래 청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강제로 의용군에 끌려가

용주사에서 잠간 훈련받고

인민군 복을 입고 한 없이 남쪽으로 내려가

낙동강 전투의 총알받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소식 없으신 형님의 모습 생각하면

분단의 비극이 한없이 밉다.

 

19511.4후퇴 후

오산까지 밀렸던 유엔군의 반격을 하늘에서 보았다.

수십여 대의 미 공군 무스탕 전투기가 마치 에어쇼 하듯

 적군을 향해 기총소사 하던 모습을

그냥 구경삼아

동네 마루태기에서 보았다.

 

집 앞 디딜방앗간에서 나는 친구들과

M-1 실탄, 카빈총 실탄, 딱콩총 실탄을 가지고

터트리며 재미있게 놀기도 했다.

 

면소재지 복판에는 폭탄 맞아 생긴 두 개의 큰 웅덩이에

물이 잔뜩 고여 있었고

그 옆 아버지 따라가서 1952년에 입학한 초등학교는

교실이 없어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뉘어

운동장 나무 그늘 밑을 교실로 사용했다.

 

초토화된 이 나라 이 강산

백년이 가도 일어서지 못하리라 했다지만

우리는 근면과 배움으로

슬픔과 가난을 이겨내고

굳건히 오늘의 이 나라를

일으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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