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꼴레르 / 최병우
1974년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 보수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양의 고철과 목재 등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매각 입찰공고를 냈지만, 재활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업자들은 아무도 응찰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유태인이 산처럼 쌓인 쓰레기를 가져가겠다고 계약하여 많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샀다.
그 유태인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쓰레기를 분리한 뒤 금속은 녹여서 작은 자유의 여신상 모형을 만들었고, 시멘트 덩어리와 목재로는 여신상의 받침대를 제작했다. 아연과 알루미늄은 뉴욕광장을 본뜬 열쇠고리를 만들었고, 시멘트 가루도 잘 포장해서 꽃가게에 팔았다. 결국, 그는 쓰레기를 사들인 350달러의 1만 배가 넘는 350만 달러의 돈을 벌었다 한다.
나는 위와 같은 사람을 “브리꼴레르(bricoleur)”라 부르고 싶다. “브리꼴레르”란 말은 프랑스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말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보잘것없는 판자 조각이나 돌멩이, 못쓰게 된 톱이나 망치를 가지고 쓸 만한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어내는 사람을 두고 지칭하는 말이다. 즉 손재주가 뛰어난 목공 기술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서 실력을 쌓은 전문가라기보다 체험을 통해 해박한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실전형 전문가, 즉 주어진 재료로 최고의 작품을 만드는 기술자를 뜻한다. 마치 영화 속의 맥가이버처럼 활용 가능한 도구나 자원을 자유자재로 이용해 위기상황을 탈출하거나 기존 지식을 자유롭게 융합해서 주어진 문제 상황을 벗어나는 해결의 귀재를 일컫는다. (발췌: 유영만의 브리꼴레르)
역사적으로 보면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 페니실린을 발명한 플레밍, 전화기를 발명한 벨 등이 헌칠한 “브리꼴레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브리꼴레르”의 선두 주자라면 아마도 스티브잡스가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 모든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남들의 수많은 기술과 재능을 조합하여 가치 혁신시켰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욱 가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이 있다. 그는 단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다. 한문을 발판 삼아 학자들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새롭고 독특한 한글을 창조해 냈으니 말이다. 농기계, 과학기계를 만들어 보급한 선조들의 지혜를 보면 그들이야말로 이 나라의 보배로운 “브리꼴레르”라 말하고 싶다.
그러면 “브리꼴레르”는 위와 같은 범위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는 특정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구전으로 전해오는 우리 고전에 아래와 같은 일화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두서없이 소개하며 그 일화가 주는 교훈과 풍기는 감성을 음미해 보며 또 다른 유형의 “브리꼴레르”를 찾아보고자 한다.
옛 신라 시대에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가난한 어머니가 있었다. 예년과 다름없이 이 가정에도 추석이 다가왔다. 남들은 기쁘고 흥겨운 명절이건만 그들 모자는 외롭고 슬펐다. 건너 부잣집에서 들려오는 떡방아 찢는 소리와 고소한 음식 냄새가 오히려 어린 아들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했다.
“엄마! 나 송편 먹고 싶어. 우리도 해서 먹자.“
점심도 거른 채 배고파 칭얼대는 어린 아들, 아직 철몰라 졸라댄다지만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답답하였다. 하루 두 끼도 어려운 형편,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저녁에 먹으려고 솥에 넣어둔 보리 누룽지를 꺼냈다. 배고픔에 벌써 누룽지에 손을 대려 했던 아들이다. 송편은 고사하고 당장 무엇이라도 먹여 저녁의 배고픔을 면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허기를 냉정하게 뿌리치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 누룽지를 깨끗한 주발에 정성스레 담아 고운 보자기로 덮은 후 아들을 시켜 건너 부잣집 마님께 가지고 가게 했다. “우리 집의 가장 귀한 것이니 맛있게 잡수세요.”라 말씀드리라고 일러 보낸 것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 부잣집의 마님은 가난하게 살면서도 남을 생각하고 보내온 가난한 여인의 고운 마음에 감동되어 감사의 표시로 송편을 넉넉히 담아 보내줬다. 결국, 가난한 모자는 배불리 먹게 되었고 추석도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아! 놀라운 여인의 지혜! 정성이 담긴 작은 베풂이 마중물 되어 땅속의 무한한 샘물을 끌어 올리는 수동펌프의 이치를 그녀는 천 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본인은 물론 어린아이에게 기쁨의 추석을 선물했고, 송편을 보내준 부잣집 여인에게는 베푸는 행복을 선사했다. 이 여인이야말로 자유의 여신상의 폐기물로 거액을 벌어들인 유태인 보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의 귀재인 “브리꼴레르”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또 다른 유형의 아름다운 “브리꼴레르”를 가까운 곳에서 찾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바로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 매일 음식을 조리하는 주부들이다. 인간은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하루에 세 번의 식사를 한다. 그때 이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주부이다. 나는 아내와 수십 년간을 살아오며 솔직히 내가 식사를 준비하여 아내에게 제공해 본 일이 부끄럽게도 없다. 동양인의 사고로는 당연하지만, 서양인이나 젊은이들의 잣대로 보면 아니 될 말이다.
나는 아내를 가까이 보면서 하루에 세 번 음식을 만들어 내는 그 솜씨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아침에 기상하자마자 언제 생각해 냈는지 밥상을 거침없이 차린다. 과거 수십 년 동안 아침 일찍 출근했던 나에게 밥을 걸러 보낸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비상이 걸려 새벽 5시에 출근할 때도 먼저 일어나 밥상을 차려 주었다. 점심때도 저녁때도 마찬가지다. 가족들이 아플 때는 특별히 고안하여 입맛을 돋아주고, 손님이 오면 다과도 맵시 있게 준비한다.
처녀 시절 부엌에 들어가 본 적이 거의 없었던 아내였건만 가정이 어려워지자 과감하게 식당을 차렸다. 그리고 요리를 창조하여 대접하므로 손님들이 또 다른 손님을 데리고 와서 허름한 식당 안을 항상 가득 채우게 했다.
“요리에는 법칙이 없고 계속 연구하고 창조해 내는 것”이라 한다. 어쩌다 외식할 때면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 맛보았다가 그것을 응용해 더 좋은 음식을 만들어 냈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마음, 내 식구가 먹는 음식이라 생각하고 항상 좋은 재료로 정결하게 요리하였다. 아내는 분명 식단구상과 요리의 전문가로서 부족함 없는 진정한 “브리꼴레르”라 아니할 수 없다.
아! 그러면 나는 뭔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겐 “브리꼴레르”적인 모습이 없다.
실망하며 어느 날 아내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랬더니 아내는 눈을 반짝이며 내게 “아니다. 당신은 넘쳐요.”라고 말했다. 농담 같아서 내가 오히려 반문하니 아내가 내게 용기를 주려는 듯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었다.
내가 전기도 잘 고치고, 못질도 잘한다며 자기는 무서워서 절대로 하지 못한다고 한다. 간이 원두막이나 평상을 만드는 것을 보면 신기했고, 나무에 올라가 톱질할 땐 너무 훌륭해 보였단다. 운전도 자기보다 훨씬 잘하고 걷기도 자기보다 빠르고 몸도 날씬하단다. 수도나 화장실 변기가 고장 날 때면 어쩌면 그렇게 잘 고치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다 큰 자식들로 인해 마음 상할 때에 자기는 즉흥적, 감정적으로 속마음을 쏟아 놓지만, 나보고는 차분히 이야기한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결혼 후 지금까지 경제적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때로는 유머를 풍부하게 준비하여 자기를 즐겁게 해 준다며 나보고 분명 “브리꼴레르”라 칭찬해 주었다. 칭찬을 들으니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렇구나! 이제라도 내 가진 재능으로 작은 것부터 베풀며 살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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