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초년))

아버지 / 최병우

시육지 2018. 7. 31. 22:06



아버지 / 최병우

 

태양이 열정을 쏟아내는

칠월이면 아버지는

갯논 섭 참외밭으로 분가하셨다.

 

투박한 밤나무기둥과

광문 한 짝, 부엌문 한 짝

그리고 밀짚 엮어 만든 뾰족한 지붕을

소달구지에 실었다.

 

순둥이를 앞세운 들길

어리광 송아지는 종종걸음

아버지와 나는 함께 고삐 움켜잡고

구불구불 논 뚝 길을 넷이서

느릿느릿 걸어갔다.

 

네 개 기둥을 땅속에 깊이 묻고

지붕을 하늘 높이 매달고

마루를 얹고 사다리를 만드시곤

나를 먼저 오르라 하셨다.

 

참외가 제법 커지면

큰 호박참외 옆에서 고사지내시고

밭 안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하셨다.

참외가 익으면 아버지는 제일먼저

이가 없으신 할머니께

농익고 무른 참외를 손수 따다 드리셨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이 몰려와

원두막 바닥은 금방 참외껍질로 수북해졌다.

 

배불러 노래도하고 책도 읽지만

시원한 바람에 모두 잠들어 버렸다

 

어쩌다 게슴츠레 눈을 떠보면

아버지는 땡볕에서 일만하고 계셨다.

 

비 오고 천둥칠 때 혼자 있으면

대낮인데도 무서워

홑이불 뒤집어쓰고

눈 감고 귀도 막았다.

 

이럴 때면 영락없이

어느새 오셨는지 헛기침하시고

나왔다하시며 도롱이를 벗으셨다.

 

저물녘이면

어머니가 가져오신

저녁 잡수시고

어두워지기 전에 우릴 집에 보내시고는

원두막에서 혼자서 주무셨다.

 

칠월 어느 날 문득

삶에 지칠 때

난 그때의 원두막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가 안보여

두리번거리노라면

나 여기 있다.” 하시며

내 가슴 속 원두막에서

인기척을 해주신다.

 

 

 

 

 

 

 

 

 

 

 

 

 

 

 

 

 

 

 

 








'나의 시(초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솜틀 / 최병우  (0) 2018.10.26
군불 / 최병우(시)  (0) 2018.10.13
배추꼬리 팽이 / 최병우  (0) 2018.04.04
겉과 속 / 최병우  (0) 2018.03.29
자치기 / 최병우  (0) 2018.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