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초등)

모정

시육지 2018. 11. 11. 19:03

            

모정 / 최병우

 

 

해마다 유월이면 6.25 전쟁 때 큰 형님이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내가 다섯 살이었고, 큰 형님은 스물한 살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큰 형님은 육 남매 중 부모님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던 자식이었다. 그런데 그 형님이 안타깝게도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갔고 6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으니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형님의 호적 이름은 병묵(炳黙), 집에서는 장철(長鐵)이었다. 어린 내 기억엔 형님 모습이 희미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네 형 만한 효자는 이 세상에 절대로 없다.” 하시며 내게 눈물을 보이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형님을 전쟁은 매정하게 어머니 품에서 빼앗아가 버렸다. 의용군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벽장과 다락, 보리밭에도 숨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천지 분간 못하고 북의 앞잡이 된 자들은 끝내 형님을 찾아내 전선으로 보내고 말았다. 용주사에서 훈련받다 잠시 집에 들렀지만, 마음 약한 우리 큰형님은 부모 친지와 눈물로 이별하고 의미 없는 전선으로 떠나신 것이었다.

 

! 슬프고 안타깝다. 어떻게 해서든지 의용군으로는 끌려가는 것을 막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우리 부모님이 어리석어서였을까? 아니다. 시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시골 한 동네에서 청년 여섯이나 징발되어 모두 사라졌으니 말이다.

 

유난히 효도하셨던 착한 형님이었기에 큰아들을 빼앗긴 우리 부모님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긴 세월을 저린 가슴 부여안고 사시느라 걸음걸음이 한숨이고 한이고 그리움이셨다.

 

어머님은 너무나 큰아들이 그리워 내가 열 한 살 될 때까지 육 년간을 검게 그을린 부엌에서 큰아들을 애절하게 부르셨다. 솥뚜껑 여시고 밥을 풀 때마다 제일 먼저 형님 주발에 따뜻하게 김 나는 흰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부뚜막에 놓으시며 세 번씩이나 눈물로 간원하셨다.

 

장철아! 밥 먹어라

장철아! 밥 먹어라

장철아! 밥 먹어라

 

그러나

어머님은 큰아들을 마음속에 품으신 채 끝내 먼 길을 떠나셨다. 지금은 아마도 어머님은 하늘에서 그리웠던 큰아들을 만나 평안히 계시리라. 일흔넷의 막내인 나도 큰 형님이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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