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으로 일어난 가계
“닭을 산채로 싸게 팔지 말고 요리해서 팔아보라”
이 말은 내가 꿩과 토종닭을 기르면서 손해를 보고 있을 때 어느 분이 들려준 말이다. 아내와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후 나는 요식업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기도하며 검토해보았다. 이 업종은 아내가 주로 감당해야 할 텐데 이에 대한 경험과 취미도 전혀 없는 아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내는 내게 강한 의지를 보여 주며 험난한 길을 같이 걷자고 말해 주었다.
우선 식당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때 마침 사료를 배달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꿩 사육장의 쇠 파이프 일부를 뽑아 기둥을 세우고 보를 용접하여 건물의 골격을 이루었다. 홀과 휴게실과 주방으로 구분하여 칸막이한 후 벽은 합판과 강판과 단열재로, 지붕은 얇은 강판으로, 천장은 합판으로 반자를 하였다.
창문과 출입문은 중고품으로 틈이 많이 벌어져 겨울이면 문풍지를 철저히 대야 헸다. 바닥은 단열, 배관, 미장 후 비닐장판을 깔았다. 그리고 기름보일러를 설치하고 별채로 화장실도 지었다. 주방엔 조리대와 냉장고를, 홀에는 낮은 중고식탁을 구해 놓았다. 이 모든 과정을 경험도 없는 내가 손수 연장을 들고 약 두 달 만에 완성한 것이다.
아내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면 밤늦게나 씻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새벽부터 밭에 나가 고추, 들깨, 참깨 무, 배추, 콩 등을 빈 곳이 없도록 심고 가꾸다가 점심때면 식당으로 가서 손님을 맞았다. 닭과 꿩을 내가 잡아주면 아내는 손수 가꾼 농산물로 백숙과 탕을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였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조리법을 알아내기 위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주변의 식당이나 시장을 찾아다닌 아내의 근면성과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후 새로운 메뉴를 추가하게 되었는데 그 메뉴는 지금까지 이어온 옻닭이다. 조리법을 몰라 전전긍긍하다가 거래처 중에 안산에서 옻닭을 하는 식당을 아내와 함께 찾아갔다. 조리법을 물어봐야 하는데 알려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음식을 주문해가며 조심스럽게 조리법을 알려달라 졸랐다. 처음에 머뭇거리던 주방 아주머니는 우리의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어느 누가 봐도 우리 식당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헛간 같았을 텐데 손님은 끊이지 않았고 점차 그 수가 늘어나 종업원을 한 사람 두어야 했다. 어느 해 이른 봄날 웃고 넘기기에 좀 부끄러운 일이 있었다. 손님이 식사하고 있는데 천정에서 물이 떨어져 피하고 닦아내느라 한바탕 법석대었다. 천장 속에 단열재가 없어서 발생한 일종의 결로현상이었다. 그렇지만 평소 아내의 정성을 다한 서비스와 미소로 이런 정도는 손님이 먼저 웃어넘겨 주었다.
허름한 주방의 구조로 인해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다. 높은 조리대에 솥단지를 반복하여 올리고 내리다 보니 아내는 목과 팔과 어깨에 심한 통증으로 나중엔 수차례 수술도 받아야 했다. 상식이 없는 내가 눈대중으로 조리대를 높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또 여름이면 조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땀띠로 범벅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환풍기를 달거나 조리대를 조금 낮췄으면 그만큼 아내도 고생을 덜 했을 것이었다.
그 후 아내의 근면함은 계속되었다.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밭에 나가 김을 매었고, 밭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모자라면 식자재값을 아끼려고 새벽에 수원 농산물 시장을 찾았다. 그리고 닭장차가 와서 닭을 뺄 때는 밤늦도록 닭을 날라준 후에야 보금자리였던 조립식 열 평 집에 들어가 씻고 잠들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어느덧 밀렸던 사료대금 4천만 원을 갚았고, 1998년에는 큰아들을, 2003년에는 둘째 아들을 장가들여 분가시켰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가족을 위하여 피땀 흘렸던 보람은 헛되지 않았다. 지금은 개발로 그 형태가 모두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반듯한 식당과 공장을 짓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으니 수고한 아내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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