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행정리 후)

발소리

시육지 2021. 3. 5. 21:40

발소리

 

서서히 날이

밝아오면 안마당에서

발소리가 베갯잇을 통해

귓가에 꿈결같이 들려온다.

 

쇠죽 쒀 구유에

퍼 옮기는 아버지의 발소리

행주치마에 바가지 들고

부엌과 광을 오가는 어머니의 발소리

 

벌써 깨셔서

창호지 쪽창 유리 구멍에

한쪽 눈을 갖다 대시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걸으시는 할머니의 발소리

 

수수깡울타리 너머에서

아침햇살이 솟아 안마당에 닿으면

외양간에서 거드름 떨고 나오는

우리 집 상전 순둥이의 뚜벅뚜벅 발소리

 

들려오는 소리 들이

꿈같아 살며시 꿈에 또 빠지는데

아침 먹어라! 소리에

깜짝 놀라 세수하러 뛰어가는

슬리퍼 내 발소리

 

 

 

 

 

 

 

 

 

 

 

 

 

'나의 시(행정리 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향 안마당  (0) 2021.03.12
울타리  (0) 2021.03.06
사라지는 것들  (0) 2021.03.01
우물터  (0) 2021.02.28
숭늉  (0) 2021.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