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하수(下手)의 철학

시육지 2021. 9. 20. 14:53

하수(下手)의 철학

 

지난 젊었을 때 나는 직장에서 점심시간이면 탁구 복식 경기를 즐겼다. 탁구대보다 사람이 훨씬 많아 무조건 이겨야만 한 게임을 더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탁구 기술은 제쳐놓고 별의별 좋지 못한 요령만 배우게 된 것이 몹시 안타깝다. 그때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은 탁구장도 레슨도 몰랐고 누게 에게 배울 줄도 몰랐다.

 

나는 요즘 탁구장을 다니며 기본기 부족을 실감한다. 탁구를 전혀 몰랐던 사람도 기본기를 차근차근 익혀 약 1~2년이면 금세 나를 능가한다. 그래서 나도 시샘하듯 레슨을 받아보았으나 요령만 부린 그 버릇이 몸에 배어 항상 제자리다. 이젠 나보다 실력이 못했던 사람에게조차 지는 바람에 거꾸로 도전해본다. 그러나 도전할수록 격차가 점점 심해져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게 됐다.

 

이에 대해 나는 일흔일곱 나이 탓이라고 슬쩍 변명한다. 그러나 옆에서 운동하는 동년배나 손위 어른들의 열정과 높은 실력 앞엔 나의 변명이 거짓임을 스스로 느끼며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그리하여 어떤 때는 탁구를 그만둘까 생각하다가도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탁구를 과거처럼 요령으로 하거나 아니면 젊은이 못지않은 의욕을 가지고 훈련해야 할지 헷갈린다. 그런데 뜻밖에 이에 대한 해답을 같은 탁구장에서 운동하는 손위 어른을 보며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었다. 그는 젊은이들보다 체력이 약해 금방 지쳐 동작은 느려도 항상 밝은 표정을 지으며 건강관리 하는 차원으로 탁구를 한다고 한다. 이 말에 나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승패나 실력을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탁구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는 그분의 정신자세를 본받아 나도 탁구를 즐겨 보기로 작정했다.

 

흔히 자신의 경험에서 얻어진 세계관이나 인생관을 흔히 철학이라 한다. 어느 탁구인의 말에 의하면 탁구에는 겸손의 철학이 숨어 있는데 경기에 임하는 자세에서 그 사람의 인성을 관찰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을 덧붙였다.

 

선수들이 경기하는 모습을 살펴보라. 실력이 높을수록 허리의 각도가 벼 이삭같이 숙어지지 않는가? 탁구에 입문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희망 부의 모습을 보라. 대부분 머리를 꼿꼿이 세우지 않는가. 그러다가 5~4부가 되면 10도쯤, 3부가 되면 30도쯤, 2부가 되면 40도쯤, 1부가 되면 60도쯤 되었다가 선수부가 되면 거의 90도 가깝게 허리를 굽힌다“.

 

위의 말을 새기며 관찰해보니 과연 프로선수들은 경기할 때 바짝 긴장하고 상대의 숨소리 하나라도 민감하게 들으려는지 자세를 낮춘다. 그렇게 해야 상대의 서비스나 공을 자세히 볼 수 있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탁구의 기술은 끝이 없고 절대 고수도 없지만, 상대적 고수가 되는 방법은 겸손하게 탁구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다. 이것이 탁구가 우리 인간에게 던지는 무언의 교훈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같은 탁구라 해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다. 조화와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가에 따라 웰빙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노동 스포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경기하다가 패하여 스트레스가 쌓인다면 먼저 마음의 평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탁구를 즐기고 있다. ‘노부부는 취미가 같아야 좋다라는 나의 권고로 아내가 탁구를 시작해 신체적 열세에도 레슨을 받으며 기본기부터 열심히 연마하였다. 이젠 실력이 월등한 젊은이들과 게임은 할 수는 없지만 둘이서 얼마든지 재미있게 게임을 하며 즐기고 있다.

 

탁구는 나와 아내에게 건강의 디딤돌이 되었다. 아직은 머리를 꼿꼿이 세우는 희망 부이지만 60도 가까이 머리를 세우는 실력자의 모습을 꿈꾸며 건강을 위해 열심히 심신을 단련하는 마음으로 탁구를 계속 즐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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