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들은 우리의 소중한 분신
최 병 우
만삭의 몸으로 묵호를 떠나 영주로 이사할 때 아내의 나이는 만 24살이었다. 그 때 6시간이나 열차에 시달리며 이사 오느라 아내는 무척 지쳐있었다. 그 지친 몸으로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곳 영주에서 하루를 산통으로 몸부림쳤고, 그리고 사생결단의 각오로 아내는 아기를 낳은 것이었다. 그 아기가 바로 첫 아들 “진규”다.
갓난아기 진규는 아내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무럭무럭 잘 자랐다. 달이 거듭할수록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점점 미모가 수려해졌다. 사람들은 우유 빛 같은 어린 진규를 보면 귀엽다면서 만져보고 안아보며 분유광고에 나오는 아기보다 더 잘 생겼다고 한마디 씩 하곤 했다. 시댁에 갔을 땐 속마음을 겉으로 나타내시지 않는 할아버지조차 손자가 사랑스러워 넘어져 다칠까봐 조바심 내시며 “허허! 이 녀석!”하시며 덥석 안아주셨다. 어린 조카들은 서로 안아주고 싶어 시샘하듯 돌봐주니 정작 아기 엄마는 여벌이었다.
영주에서 살았던 기간은 단지 2년뿐이었다. 그런데 우여곡절은 더 많았다. 왜냐하면 첫아기를 낳아 키운 기간이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좋았던 기억은 잊혀 졌지만 아슬아슬 외줄 타는 곡예사 같이 위험천만한 기억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이야기 세 가지를 적어본다.
제1화 -연탄가스 중독으로 세 식구 모두 죽을 뻔-
진규의 첫 돌이 지난 초가을 어느 날이었다. 우리 세 식구 모두 죽을 번했던 일이 발생했다. 먼저 살던 집이 겨울엔 너무 춥고 여름엔 너무 더워 이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 이사한 집은 오랫동안 비워놓았던 한옥인데 온돌방바닥과 벽 모서리의 틈이 많이 벌어져 있었다. 그러나 깔린 비닐장판 밑을 들춰보거나 확인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연탄가스 중독에 대한 상식도 없어 평안한 마음으로 우리 세 식구는 연탄불을 피우고 밤에 잠을 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밤사이에 방바닥 모서리 틈으로 연탄가스가 가득히 스며들어 우리 세 식구는 먼 타향 땅에서 부모님 마음에 못을 박고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틀림없이 죽을 인생이었다. 어느 누구의 도움이 없었던들 우리 세 식구는 필연코 죽었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면 지금도 가슴이 아찔하다. 그런데 하늘은 사람을 통하여 우리를 살려 주셨다. 그 주인공은 안집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우리 세 식구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우리 방문을 두드린 것은 기적이었다. 출입문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있어 서로의 동태를 잘 모를 뿐 아니라, 평소 퉁명스럽고 대화나 왕래도 없어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 여인이 그날따라 아침 일찍부터 출입문을 두드린 것이었다. 왜냐하면 돈을 빌리려고 말이다. 인기척이 없자 수상히 여긴 아주머니가 부엌문을 부수고 들어와 깨우는 바람에 모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꽤 시끄러웠다. 그러나 내게는 미세한 소리로 들렸다. 정신이 들면서 “아! 내가 연탄가스에 중독 된 것이구나!”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눈은 떴고 의식은 어렴프시 있었으나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의 양어깨를 부추겨 밖으로 끌어내어 마당 흙바닥에 엎드려놓았다. 사람들이 퍼다 주는 동치미국물을 마시고 한참 후 정신을 차렸지만 뻐개지는 것 같은 머리의 통증은 온종일 계속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아내도 나와 유사한 고통을 느꼈다고 하였다. 어린 “진규”도 내가 느꼈던 고통을 똑같이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나는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너무 소홀해서 발생한 위험천만한 사건이 아닌가!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연탄아궁이나 방구석 혹은 문틈으로 스며드는 연탄가스를 철저히 대비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쯤은 구십 줄 접어들었을 그 아주머니! 하늘의 인연으로 돈 빌리려 왔다가 우리의 생명을 구해 준 그 아주머니는 오늘 무엇을 하고 계실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내가 만났던 모든 이웃들로부터 받은 은혜는 끝이 없다. 그 때 돈은 빌려주지 못했어도 그 아주머니와 이웃들의 고마움은 영원히 내 마음에 간직될 것이다.
제2화 -진규가 탈수증으로 죽는 줄 -
몇 달 후 진규에게 또 한 번의 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진규가 설사를 하여 병원엘 다녀왔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며칠 째 계속 설사를 하였다. 모유를 먹이면 얼마 후에 흰 모유 빛 그대로 설사를 했는데 마치 오줌 줄기 같이 내 뿜었다. 오줌은 나오지 않고 설사만 했는데 계속되다보니 탈수증세를 일으켜 축 늘어져 죽은 것 같았다.
어쩔 방법이 없어 아내는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며 도움을 청했다. 그 때 마침 이웃에 사는 할머니께서 소식을 듣고서 마음조리고 있는 아내에게 참깨 알만한 검은색 작은 덩어리를 주었다. 아편이었다. 숟가락에 모유를 받아 두세 차례 타서 먹이라하였다. 아내는 할머니에게 크게 감사하고 바늘 끝으로 두 조각을 내어 우선 한 개를 모유에 타서 아기의 입을 벌리고 먹였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지나간 후 다시 한 번 더 먹였다.
아기는 깊이 잠을 잤다. 얼마 후 기저귀를 살펴보니 척척했다 오줌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 할머니가 찾아오셔서 “어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설사는 안하고 안 누던 오줌을 누었다고 했더니 “그럼 되었다.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하셨다. 신기했다. 축 늘어졌던 아기가 놀랍게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심했던 설사도 멈췄고 수 일후엔 완전히 회복되었다.
이름도 모르는 그 인자하신 할머니가 너무 감사하다. 철없어 감사의 인사도 할 줄 몰랐던 그 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움뿐이다. 수십 년 전에 벌써 이 세상을 떠나셨을 그 할머니에게 뒤늦게 감사의 뜻을 전해본다. 그 아기가 자라 이젠 중고생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말이다.
제3화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은 기쁨-
이러한 일들이 있은 후 진규는 잘 자랐고 가정은 평온했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즐거움이었다. 그런 아기가 벌써 세 살이 되어 이제는 밖에 나가서도 잘 걸어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또 벌어진 것이다.
1974년 초여름인가 싶다. 직장에서 근무 중 점심시간을 이용해 두고 온 서류를 가지러 잠시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왁자지껄 웅성대는 소리에 귀 기울여보니 아내가 진규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었다. 안 마당에서 빨래하느라 잠간 한눈 판 사이에 아기가 없어졌다며 아내는 울상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나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찾아 나섰다. 이웃의 아주머니들도 도와주었다. 골목길을 황급히 다니면서 “진규야!”를 외쳤다. 그러나 아이는 없었다. 초조했다. 주변에 깊은 물은 없어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가끔 지나다니는 차량들과 자전거에 혹시 다치지나 않았을까? 너무 예뻐서 누가 납치하지는 않았을까? 공상은 꼬리를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조그만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었는데 아마 지금도 가지고 있을 거예요” 라며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울었다.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아내의 그런 모습은 내겐 처음이었다. 스물다섯 살 엄마의 애틋한 자식사랑은 아내를 넋 잃은 여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진규는 밖에 나오면 누가 불러도 대답 없이 앞으로만 걸어가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이번에도 무조건 골목길을 벗어나 마을길 따라 걸어갔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마을길은 논틀을 끼고 300미터 쯤 아래로 내려가 국도와 연결되어있다. 그 쪽으로 단숨에 뛰어갔다. 영주와 안동을 잇는 중요한 도로지만 중앙선도 없고 인도도 없는 좁은 국도였다. 흔히 사람들은 이 도로를 “안동통로”라 불렀다. 차량의 왕래는 다행히 뜸했지만 이따금씩 가로수 밑을 달리는 차량들은 쏜살같았다.
나와 아내는 분담을 했다. 아내는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나는 북쪽으로 찾아 나섰다. 나는 약 2분쯤 걸어가다가 어린애가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되돌아가고 있었는데 남쪽 멀리에 있던 아내의 힘차고 밝은 외침소리가 들렸다.
“찾았어요! 진규 찾았어!”
나는 그쪽을 향하여 단숨에 달려갔다. 차량이 쌩쌩 달리고 갓길도 없는 그 위험한 국도 옆을 아내가 진규를 데리고 걸어오고 있었다. 마음 졸였던 부모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손엔 작은 자동차 장난감을 움켜쥔 채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진규가 가든가든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깊은 긴장감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안도감을 찾았고 입으로는 “감사합니다.”를 연발하고 있었다.
“어디서 어떻게 찾았어?”라고 물으니 아내가 함빡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남쪽으로 조금 가다보니 진규가 길가에 서서 장난감을 손에 쥔 채 울며 서성거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위험해 보여서 얼른 뛰어가 진규를 길 바깥쪽으로 세운 후 놀랬을 마음을 포옹으로 안심시키고 데려오는 것이라며 아내는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말 귀도 못 알아듣는 어린 진규에게 야단치듯 말했다.
“진규야! 다음부턴 이런데 혼자 오면 안 돼!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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