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영주 묵호)

어느 날 돌아 온 돈 뭉치

시육지 2017. 9. 27. 18:34

                     


                                       어느 날 돌아 온 돈 뭉치

                                                                        

                                                                                                최 병 우

 

 

올해 칠순을 맞은 아내와 저녁식사를 일찍 마치고 공원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도중에 느닷없이 아내가 43년 전 옛 얘기를 꺼냈다.

 

영주에서 수원으로 이사 올 때 너무 힘들었어요.”

뭐가 힘들었느냐?”라고 물어보며 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철공장 사장에게 20만원을 빌려주었던 것 기억나요?”

나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다가 , 맞아, 기억나네, 이사할 때 못 받아서 당신 너무 마음아파 했었지.”

 

그 때 사연은 이러했다. 당시 나의 월급은 약 2만 원 정도로 박봉이었다. 그러나 내가 퇴근 후 상의 속주머니에서 월급봉투를 꺼내줄 때면 아내는 항상 기쁜 표정으로 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 때마다 나는 행복했다. 월급봉투는 항상 아내가 맡아 관리하였다. 그 돈으로 한 달 동안 빚 안지고 살림을 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어려서부터 검소함과 근면함이 몸에 밴 아내는 알뜰함과 지혜로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같은 동네 철공장 사장부인에게 20만원을 빌려주었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너무 불쌍했기에 꿔준 것이었다. 2-3개월만 쓰고 갚되 이자도 준다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귀가 얇았던 아내는 동정심이 앞서 차용증도 없이 선뜻 빌려준 것이었다. 그 돈은 결혼 후 3년 동안 아내가 온갖 살림비용을 줄여가며 장래를 위하여 내게도 몰래 은밀히 저축한 것이었다. 그 때 20만원은 실로 2만 원 봉급자에겐 매우 큰돈이었고 목숨 같은 돈이었다.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속마음을 비치지 않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으니 잘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공장으로부터 이자를 한차례 받은 후 문제가 생겼다. 그 다음부터는 몇 달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웃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부도가 나서 망했다고 했다. 아내는 초조함에 아이를 들쳐 업고 공장을 찾아갔다. 부도가 나서 망했으니 얼마나 딱하랴 생각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대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깜짝 놀랐다. 아내의 눈엔 그들이 망한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우리 식구들은 감히 먹어보지도 못한 수박과 바나나 껍질 그리고 빈맥주병이 마당에 수북했다. 조심스럽게 방문 밖에서 인기척을 하니, 사장 내외가 귀찮아하며 억지로 나왔다. 돈 얘기를 꺼내니 부인은 미안해했지만 사장인 남편은 깡통을 걷어차고 욕을 해대며 오히려 난동을 부려댔다. “그까짓 돈! 에이 더러워!” 라고 하며 욕설을 퍼부어 댔다는 것이다.

 

아내는 나보다 더욱 낙심하는 듯 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 사람이 워낙 빚이 많고 성질이 더러워 받아내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풀이 죽었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서울로 발령을 받아 곧 바로 수원으로 이사하게 되어 우리의 마음은 더욱 조급했다. 나는 먼저 가서 셋방을 구해야 했다. 돈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 돈이 더욱 절실했다. 그러나 빌려간 사장은 행패만 부려대니 하는 수 없이 형님 댁에서 돈을 빌려 방을 얻어야만 했다.

 

이사하던 날 아내가 사장부인을 마지막으로 만나긴 했으나 돈은 받지 못했다. 그 대신 나중에라도 꼭 갚겠다.”라는 말만 듣고 떨어지지 않는 먼 길 수원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 분들이 어려워서 그렇지 언젠가 줄 것이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나 역시 내심으론 받아내기 힘들 것이라 생각하며 언짢아했다.

 

수원으로 이사 온 후의 생활은 고달팠다. 6개월 후 낳은 둘째 아이가 너무 울어대는 바람에 이사를 두 번이나 했고, 고등학생이었던 큰집 조카까지 돌보느라 아내는 파김치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빌려주었던 돈 20만원은 아쉽지만, 포기해 버린 지도 오래되었다. 받으러 갈수도, 연락도 할 수가 없었다. 그 돈만 생각하면 아깝고 분하여 잠도 안 오고 후회도 되었다. 그러나 밉지만 그만 잊어버리자고 아내와 누차 다짐을 했다.

 

그렇게 마음 삭이며 4년이 지나간 어느 날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하루는 오전 10시경 나의 직장 사무실로 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못 듣던 여인의 목소리인 터라 누구냐고 물었더니 경상도 영주에 살던 공장사장의 부인이라고 했다. 수위실로 내려가 인사하고 휴게실로 옮겨 음료를 나누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공장이 망한 후 우여곡절 끝에 서울로 이사하여 근근이 살고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 돈 봉투를 내밀며 경상도 영주지방의 사투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그 마음 착한 새댁의 돈을 떼먹어야 되겠습니껴. 나도 마음이 왜 안 아펐겠습니껴. 이자는 못 드려도 본전만이나마 받아주시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지 않겠습니껴! 새댁에게 내말을 꼭 전해주소.”

 

나는 감격 속에 그 봉투를 받으며 고맙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돈 많이 버시고 잘 사세요.”라고 힘주어 말했다. 퇴근 길 서울에서 수원까지 전철을 타고 퇴근해 오는 동안 내 마음은 온통 흐뭇한 미소로 가득했다. 이 돈을 아내에게 전해주면 어떤 모습을 할까? 전해줄 때 그냥주지 말고 깜짝 놀라게도 해볼까?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집에 도착했다.

 

아내에게 돈 봉투를 전해주었더니 아내가 물었다.

웬 돈이요? 혹시 나쁜 돈이요?”

아냐, 공짜로 누가 줘서 받아왔지.”

공짜라니 누구인데?”

여자야라고 내가 답했다.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안색이 변했다. 그렇지만 속마음을 감추고 조용히 나에게 물었다.

어떤 여자인데요?”

, 영주에 살 때 우리 돈 빌려갔던 그 공장부인, 그 여자가 돈을 가져 왔어.”라고 내가 답했다.

아내는 나의 두 손을 움켜쥐더니 탄성을 질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 여자가 어떻게, 그 돈을 가져오다니?”

 

나는 낮에 그녀로부터 돈을 받았던 과정을 아내에게 상세히 말해주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얼굴만 예쁜게 아니고 마음까지 고운가 봐. 그 여자가 당신을 고맙고 잊지 못할 새댁이라고 불러주던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내는 발그레한 얼굴로 바짝 다가와 내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이런 지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공원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43년 전의 추억은 아름다운 향기가 되어 우리 부부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들었다. 모처럼 곱게 화장을 한 칠순의 아내가 나에게 몸을 기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나 오늘은 이대로 잠들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