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어둠과 환한 영혼의 별빛 / 최병우
인생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자신의 삶을 어둠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방향을 잃고 표류하는 조각배처럼 한없이 흔들리며 위기를 겪기도 한다. 내가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얼마 전 30대 여인이 아파트 9층 베란다에서 투신하려다 구조되는 장면이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해 지상에 에어 매트를 설치하고, 구조대가 8층으로 진입하여 다행히 안전하게 여인을 구조했다.
소란의 발단은 부부싸움이었다. 부부가 술을 마시다가 말다툼 끝에 화를 참지 못한 아내가 집 안에 있던 흉기로 남편의 손등을 찌른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며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매달린 것이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나는 뉴스를 보면서 그들의 옹졸한 처신을 가차 없이 비판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젊으니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젊은 시절에 그 정도는 아니어도 부부간에 다툼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지금의 내겐 지나간 일이요 장차 닥칠 일도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인지 그 뉴스는 쉽사리 나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어느 날,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쳤다. 단연코 내겐 없을 것이라고 여겼던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노인이 되면 서로 의지하고 이해심도 많아 정이 깊게 들어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완전히 빗나간 것이었다.
싸움이 있었던 그 날 오후, 아내와 함께 복지관에서 탁구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오후 4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로 모두 떠나가고 넓은 탁구장엔 우리 부부만 남았다. 나는 독감으로 몸이 좋지 않았지만,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랠리를 계속했다. 그런데 높은 볼을 스매싱하는 아내의 동작이 어설퍼 보였다. 무릎 통증으로 인해 오른쪽 발을 옮기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분명 무리였다. 계속 실수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위로의 말을 해주려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무릎 통증 때문에 풋워크 (footwork, 발놀림)이 안돼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한 것이다.
“누구누구는 잘하는데 당신이 못하는 이유는 .....”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내는 탁구 라켓을 내동댕이쳤다. 라켓은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나는 머쓱했다. 내 의중과는 전혀 뜻밖의 반응을 보이는 아내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순간 “아차!” 했다. 눈치가 아무리 없지만 내가 실언하였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 의중은 그게 아니었다고 여러 번 말해도 아내는 시선도 주지 않고 외면하곤 탁구장을 곧바로 나가 버렸다.
벌써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화도 없이 보낸 지가 며칠째다. 애지중지 남편을 보살피던 아내의 손길도 끊어졌고, 이틀이 멀다 하고 마루와 방을 청소하던 기계 소리도 사라지고 그야말로 집안은 삭막하기만 했다. 신뢰는 깨어졌고 무관심 속에 서로의 인격은 손상되어만 갔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었다.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고 위로해줘야겠지만, 쉽게 안 되었다. 전에는 이럴 때 처제가 와서 슬슬 풀어줬는데 바빠서 못 온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손주들이라도 함께 있어야 재롱떠는 통에 풀리거나, 머리 큰 자식이라도 같이 살면 서로 눈치 보느라 슬며시 사그라지기라도 할 텐데 큰일이었다.
서먹서먹하게 입을 다물고 사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을 미처 몰랐다. 젊어서는 직장에 출근했기 때문에 느끼지를 못했는데 온종일 같이 지내다 보니 감옥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긴장 속에 며칠이 지나갔다. 그런데 내게 예상치 못한 새로운 반응이 나타났다.
긴장이 풀려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하루가 점점 무덤덤해졌다. 그 증세가 마치 노년층에 제일 많이 발생한다는 우울증인가 의심했다. 그러나 건강이나 경제적 능력상실 혹은 배우자와의 사별로 인해 발생하는 그런 우울증 증세는 아직 없었다.
하지만 내가 중심을 잃고 나약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삶이 무거워 어깨를 짓누르거나, 피곤이 몰려와 눈이 어두워진 것도 아닌데, 왠지 몸이 바스라 질 것 같았다. 텔레비전을 봐도 감동이 없고, 노래를 들어도 따라부르기 싫고, 입맛도 당기지 않았다. 귀가 어두운 탓만은 아닌데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고, 괜히 심술도 나고 슬퍼졌다. 새벽에 나가 기도해도 허공만 맴돌 뿐 희망도 없는 불쌍한 고아로 정지된 세상에 그대로 버려져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느 부부가 말한 “지혜로운 부부싸움 해결책”을 떠올렸다. "화가 나면 남편은 산책하고, 아내는 부엌으로 간다. 그러면 건강도 유지하고 격한 감정에 서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지도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내겐 지나가는 잠시의 경적일 뿐이었다.
나는 지난날들을 뒤돌아보았다. 아내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생활할 수 있었던 게 거의 없다. 이제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의 마음을 풀어 이 위기를 극복해야만 했다. 그 방법을 찾는 것만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고 해법을 찾기에 고심하던 어느 날, 우연히 얽혔던 실마리가 풀리며 대단원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으니, 실로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인가.
그날 오후 장로합창단 연습이 있었다. 나는 연습하는 동안 적극성도 없고, 얼이 빠진 사람처럼 시무룩하고 무덤덤했다. 오직 아내와 화해할 방안 찾기에만 골몰했다. 얼마 후 모두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갔다. 그러나 내겐 아내와 풀어내야 할 숙제가 먼저이기에 집으로 향했다.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는 순간 ”후“ 하는 긴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하나님! 제발 도와주세요.“ 라는 말이 잠잠히 튀어나왔다.
”외식이라도 같이해봐“
이런 영감이 뇌리를 스친 건 거의 동시였다. 나는 퀴즈의 답이라도 찾아낸 듯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그것을 정답이라 여기고 싶었다. 당장 아내와 저녁 식사라도 같이하며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 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어느새 저 멀리 앞서가고 있었다. 그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그간 가정을 위해 수고하며 고생했던 아내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에 손등을 가져댔다. 차를 달려 아파트 주차장에 도달했을 때 이미 내 마음은 잔잔한 바다 같이 평온해 지고 있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가져다준 평화였으리라.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 보니 아내가 처제와 같이 소파에 앉아 담소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향해 살며시 웃어주었다. 아내도 계면쩍은 듯 피식 웃었다. 처제 덕일까. 냉전은 이렇게 싱겁게 끝났다. 그러나 처제의 길고 긴 “여자 마음의 이해”에 대한 강의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고, 나는 죄인 인양 그 강의를 끝까지 들어주어야만 했다.
“찹쌀 탕수육! 어때?”라는 내 말에 퉁명스럽지만 “그래요”하는 아내의 답이 돌아왔다. 순간 짙은 어둠에서 반짝이는 별빛이 선명하게 내 가슴으로 환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를 통해 사람은 스스로 저지른 악행으로 인과응보적 비극을 초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것은 인과응보가 아니라, 깊은 사랑과 신뢰였다. 이에 대한 오염이나 흠집이 발생할까 봐 생기는 생존 보호의 본능이었던 것이었다. 이것을 객관적 관점에서 제삼자에게서 벌어진 이야기로 조감한다면 그렇게 대단하고 심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았기에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던 것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문제해결과 아울러 큰 가뭄을 끝내는 단비를 맞는 기쁨과 행복을 주었다.
중국 음식점으로 향하는 내 작은 승용차 안은 온화한 향기로 가득했고, 어둠이 깃든 밤하늘의 별빛은 백발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이며 내 마음으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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