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필(초등)

치약

시육지 2020. 11. 19. 21:05

치약

 

지금은 양치할 때 흔히 치약을 사용한다. 하지만 나는 열두 살이 될 때까지 소금을 사용했으므로 치약이란 존재를 몰랐다. 내가 살던 시골 초가집 뒤꼍에는 우물이 있었고, 두 기둥 사이에 가로 박힌 두툼한 송판에는 머리 잘린 못들이 식구들의 칫솔을 나이순으로 총총히 걸고 있었다.

 

좀 아래 아버지가 만드신 두툼한 나무 탁자 위엔 옹기 속 소금들이 세상으로 여행 나와 우리 식구들의 입속에서 아침마다 와글와글 탐방을 했다. 늦 잠꾸러기 나도 꾸중 들을까 봐 마지못해 소금을 칫솔에 묻혀 양치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모든 식구는 들로 일하러 나가셨고 나는 학교 쉬는 날이라 아침 늦게 일어나 양치하려고 우물가로 갔다. 그런데 평소에 못 보던 튜브 모양의 치약이 탁자 위 소금 그릇 옆에 놓여 있었다. 얇게 눌려 중간까지 도르르 말린 채 놓여 있는 이것이 과연 무엇일까. 어디서 쓰던 것은 분명한데 여태껏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보니 군에서 휴가 나온 형님이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흰 바탕에 알 수 없는 외래어만 쓰여 있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다. 뚜껑을 살며시 돌려 열어 조금 누르니 가래떡 같은 흰 액체가 나왔다. 손끝으로 찍어 살짝 맛보았다. 그 순간 앗! 하며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처음 맛보는 새롭고 신기한 맛, 박하 맛이 온몸을 휘감았다. 미각에 반하여 나는 조금씩 두세 번 짜 먹었다. 그러다가 살며시 멈추고 말았다. 누가 이렇게 많이 먹었냐고 식구들에게 야단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 학교 갈 때도, 집에 와서도 생각나면 표 안 나게 짜 먹으며 나 혼자만의 짜릿한 즐거움을 누리곤 했다.

 

그러나 얼마 후 깜짝 놀랐다. 그리고 실망도 컸다. 어른들이 그것으로 양치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치약을 몰래 맛보는 즐거움은 순간에 사라졌고 실망도 그만큼 컸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도 어른들처럼 치약을 듬뿍 칫솔에 묻혀 박하 맛을 즐기며 마음껏 양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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