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와 운전
내가 결혼하기 전만 해도 자가용은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다. 지금이야 대중화가 되었지만, 그땐 운전자가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12명 중에서 단 1명 밖에 없었다. 나는 점심시간에 단체로 운전 교육을 받으러 다닌 끝에 어렵사리 면허를 땄다. 그러나 면허를 따서 도로에 나서기까지 우여곡절이 다양했다.
내가 42살 늦은 나이에 2종 보통 운전면허를 딴 것은 1987년 11월 강남 운전면허시험장에서다. 그때 필기시험은 지금과 같았지만, 실기 시험은 코스와 주행으로 구분되었다. 코스는 ‘L’ ‘T’ ‘S’ 형의 도로를 라인을 밟지 않고 연속으로 통과해야 한다. 이때 ‘T’ 코스에서 주로 떨어졌다. 나도 이곳에서 한 번 고배를 마셨다. 물론 일주일 후 두 번째 도전에서 합격했지만, 이때 너무 황당한 경험을 하였다.
재시험 보던 날, 나를 포함한 응시자들은 대기석에서 순서를 기다리며 실수하지 말자고 서로 격려하였다. 나는 차례가 되어 실기 시험 3개 코스에 도전하여 무사히 합격하였다. 기쁜 마음에 대기석을 향하여 손을 흔들었고 사람들은 박수로 축하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에 너무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여러 번 떨어졌다는 젊은 아가씨의 차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황하지 말고 잘 보라’고 말해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무사히 합격하였는지 그 아가씨가 멀리서부터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대기석을 향하여 유난스레 두 팔을 치켜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 바람에 일행도 나도 크게 손뼉으로 축하해줬다.
그런데 달려오고 있는 그 아가씨가 너무 기뻤나 보다. 약 삼 미터 거리에 이르자 치켜든 두 손을 더 높이 올리더니 앞에 서 있는 나를 향하여 껴안으려는 듯 돌진해 왔다. 엉겁결에 나도 팔을 벌렸다. 그대로 껴안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순간 헛갈렸다. 하지만, 태풍은 고요히 지나갔다. 그녀가 다행히 바로 코앞에서 발을 멈춰 서며 팔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마 나를 보호자나 배우자로 착각한 것 같다. 지금 그녀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상황은 면허시험장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광경이 아닐까 여겨진다.
면허를 취득 한지도 어느덧 삼 년, 그동안 면허는 장롱 속에 갇혀 있었다. 당연히 지하철로 오류동역에서 근무처인 휘경역까지 찜통 지하철로 통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남들처럼 승용차로 통근하고 싶은 마음에 수동식 ‘르망’ 승용차를 할부로 구입하였다. 딜러가 운반차에 차를 싣고 집 앞 도로 옆에 내려놓고 커버로 씌웠다. 나는 운전석에 올라앉아 신차의 시트 냄새를 맡으며 구조와 기능을 손과 눈으로 여러 번 확인하고 익혔다.
어느덧 보름이 지나갔다. 그러나 한 번도 운전해보질 못했다. 커버도 벗겨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방치 차량처럼 놔뒀다. 운전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서 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아내와 동네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창피했다. 더구나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가 실망하는 두 아들에게 어느새 나는 졸장부가 되었다. 이래선 안 되겠다. 아버지의 체면을 세워야지. 각오 끝에 도로 운전 연수를 했다. 장롱면허 삼 년 만에 다시 해보는 운전이라서 송두리째 잃어버린 운전 감각을 다시 찾기까지 며칠이나 걸렸다.
드디어 운전석에 올라 안전띠를 매고 자신 있게 핸들을 잡았다. 그러나 운전 교관이 옆에서 살펴줄 연수 때와는 달리 애를 먹었다. 오류동 집을 떠나 종로를 거쳐 휘경동 직장까지의 도로는 평탄했다. 그러나 집에서 오백 미터 지점에 있는 경사로를 통과할 때는 항상 긴장했다. 한 번 이상은 꼭 멈췄다가 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뒤로 밀리거나 시동을 꺼치지 않으려고 왼발로 크럿치를, 오른발로 브레이크와 액셀 페달을 재빠르게 옮겨 밟느라고 등줄기에 진땀을 흘렸다. 그 후 복잡한 종로통을 한 시간 정도 운전하여 목적지에 도착하면 정상정복이나 한 듯 성취감이 들곤 했다.
운전을 시작 한지도 어언 사십 년이 흘러 이젠 국가에서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하고 있는 시절이다. 나보다도 이웃의 안전을 위해 면허증을 반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자가용 없이 지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에 고민 중이다. 아직 정신이 멀쩡하고 건강하니 조금 더 연장해 보련다. 백세 시대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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