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응답
20여 년간의 공직 생활을 접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섰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아내를 위하여 어떤 직업이든지 구해야 했다. 세상 물정에 눈이 어두워 실수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모험이 될지라도 장래를 위해 반드시 찾아야 할 숙제였다. 이러한 문제로 인하여 1989년은 하나님께 전심전력으로 기도하는 해였다.
이러한 문제를 걱정만 하고 머뭇거릴 수 없어 교회 지하기도실을 찾아가 장기간을 밤새워 기도했다. 염려해주시는 목사님과 교우들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나는 성령께서 위로와 간구로 보호하고 계심을 굳게 믿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였다. (롬8:26)
그 후 한얼산기도원으로 혼자 금식기도 하러 떠나던 날(1989.6.26) 아내는 나를 보내며 눈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 우리 가족을 긍휼히 여겨주옵소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옵소서’ “라며 나의 손을 붙잡고 애타게 기도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기도원에 가보니 때마침 부흥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금식하며 예배에 참여했고 크게 소리 내어 부르짖었다. 사흘째 되던 날은 몸이 지쳐 늘어졌다. 예배에 참석할 수 없어 기도실 마루에 누워 들려오는 찬송을 입속으로 따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순간 이상한 환상이 보였다. 다섯 개의 서까래가 부챗살 형태로 나를 향하더니 큰 눈을 부릅뜨고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무슨 뜻일까 생각해 보니 잠잘 때가 아니라고 깨워준 것 같아 예배실을 향했다. 그러나 집회는 끝나고 그 큰 예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안으로 들어섰다. 전면에 약간의 조명이 있을 뿐 높은 천정은 초저녁의 어둠으로 물들고 있었다. 높은 강단 바로 앞 마룻바닥에 나아가 지쳐 늘어진 몸을 추스르고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간을 방언으로 기도했을까. 갑자기 환상이 보였다. 왜 그땐 환상이 자주 보였는지 모르겠다. 높은 산 위에서 예수님이 물을 뿌리고 계셨다. 그 물줄기가 산 중턱에 있는 큰 바위로 떨어져 부딪치더니 큰 폭포수가 되어 내게로 쏟아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떠 다시 바라봐도 그 잔상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행2:17)
그해 여름 아내와 양수리 수양관 집회에 참석하여 밤새도록 기도하던 적이 있었다. 밤 집회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큰 예배실 바닥에서 잠을 청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기도하는 것이 너무 좋아 축구장 크기의 푸른 잔디 위에 방석을 깔고 앉아 아내와 같이 기도하였다. 새벽이면 추워 담요를 덮고 기도했다. 기도하다 눈을 떠 하늘을 보면 별빛이 초롱초롱 반짝이며 다가와 귓속말로 ‘우리는 밤샘 친구’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낮에는 개울 옆에서 흐르는 큰 물소리를 벗 삼아 목이 터지도록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다.
몇 달 후 교회 지하기도실에서 십여 명이 밤새워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기도 중에 푸른 바다가 보이는 환상을 보았다. 드넓은 해변에 조약돌과 고운 모래 그리고 저 멀리 바다 끝에는 높은 산들이 보이는 환상이었다. 왜 이런 환상이 보였는지 알 수가 없어 같이 기도하는 집사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하나님께 해석해 달라고 기도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에 의심하지 않고 상당한 시간을 방언으로 기도하는 중에 그 뜻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었다. 바다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모래는 양식이며, 조약돌은 재물이며, 태산은 믿음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응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신앙을 윤리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던 내가 이렇게 변한 건 아마도 신앙의 성숙과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기도가 밑거름되어 험난한 세파를 물리치고 오늘의 평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음은 모두가 주님의 은혜이기에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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