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행정리 후)

얼음판

시육지 2021. 2. 1. 21:53

얼음판

 

한강이 꽁꽁 언 것을 보니

내 고향 논도 빙판이 되어

베어낸 벼 밑동이 선명히 보이겠구나.

 

텔레비전 보는 것보다

송판과 철사로 손수 만든

썰매를 탈 그때가 더 행복했나 보다.

 

부딪치고 넘어지고

앉은뱅이 썰매, 외발 썰매

동네 사내아이들 모두 모인다.

 

누가 먼저 피웠나.

나무를 주워 피운 불에

젖은 바지, 젖은 양말 모락모락 김 서린다.

 

서쪽 산에 해가 걸리면

타던 썰매를 꼬챙이에 꿰어 어깨에 메고

야단맞을까 봐 조심조심 걸어가 내려놓는다.

 

모두가 떠나간

텅 빈 얼음판만이 외로이 남아

파인 상처를 쓰다듬으며 내일을 기다린다.

저만치 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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