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와 미래
스물일곱에 결혼하여 낯선 땅 묵호에서 2년을 살다가 영주로 이사한 바로 다음 날 허름한 셋방에서 아내가 진규를 낳았다. 그때 아내가 꼭 죽는 줄 알고 얼마나 애태웠던가. 그곳에서 2년을 살다가 수원으로 이사와 용규를 낳고 셋방살이를 하면서 겪은 아내의 고초를 말해 무엇하랴. 두 아들과 편히 살려고 힘겹게 장만한 내 집으로 이사 하던 날 아내와 나는 천하를 얻은 듯 서로 손을 잡고 얼마나 기뻐했었던가. 매일 아침 일찍 열차로 서울의 직장까지 통근하며 보낸 수원에서의 10여 년을 고생인 줄 모르고 살았구나.
그 후 서울로 이사하여 아이들 교육 뒷바라지하며 보냈던 인고의 세월 5년은 비록 짧았어도 아직 뇌리에 생생하다. 서울을 뒤로하고 지금의 향남으로 거처를 옮긴 뒤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꿩과 토종닭을 사육하였던 것은 큰 시행착오였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풍요한 삶의 기초가 되었으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각과 달리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오래전부터 기다리셨나 보다. 요식업을 시작하여 가정이 일어나고 토지를 개발하여 식당과 공장을 짓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축복이며 감사한 일인가.
생각하면 지나간 세월은 장구한 것 같으면서도 잠깐인 것 같다. 그러나 부모님 생존해 계실 때 효도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면 되돌릴 수도 없고 마음만 아프다. 그에 대한 보답이라도 해 볼 양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두 아들을 잘 키워 짝을 채워 새 가정을 이루어 주었더니 손자 손녀들이 대를 이어 기쁨을 주고 있다. 자녀들의 성실함은 나의 버팀목이요 손주들의 명석함은 나의 면류관이다.
이렇듯 나는 누가 뭐래도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거부는 못 되었어도 평범한 가운데 아내와 손자녀들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같이 울고 같이 웃으며 화목하게 팔순 목전까지 살아왔다. 축구경기로 말하면 전반과 후반전을 승리로 마친 셈이다.
인생은 전반전보다 후반전이 더 소중하다. 젊어서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야 평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다. 이 진리를 아내를 통하여 나는 늦게 깨달았다. 육십까지 열심히 일한 후 노년은 평안히 보내겠다는 좌우명을 아내는 젊었을 때부터 실천해 왔다. 그 결과 나도 후반 인생을 국 내외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게 되었고 젊어서 못해본 취미생활도 하고 있다.
이제 나의 인생은 후반전도 끝나고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러므로 하프타임이 필요하다. 지나간 전후반을 참고하여 연장전을 대비하듯 여생의 행복 창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작전을 세워 본다.
첫째,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하자. 지구에 태어나 산다는 것, 매일 같이 쓸 수 있는 물과 햇빛, 자녀들이 독립하여 함께 살아가는 집, 다투지만 안 보이면 왠지 허전한 아내, 부모 곁을 떠나지 않고 멀리서나마 지켜주는 자식들 이들 모두가 내겐 감사한 존재들이다. 이들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노년의 행복이요 기쁨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덤 인생을 살아가련다.
둘째. 나의 보석을 나누어 주어야겠다. 현실을 바라볼 때 나는 방구석의 늙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조용히 자신을 성찰해보면 나의 존재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와 경륜이 나의 자존감이고 진귀한 보석이 아닌가. 또한, 그것들이 내 인생의 도서관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 마저 든다. 그러므로 이렇게 귀한 나의 보석을 자녀들과 또 다른 젊은이에게 나누어 주는 삶을 서툴지만 글쓰기를 통하여 펼쳐보련다.
인생은 마지막 날에 헛되게 살았다고 탄식하면 안 된다. 심신을 잘 관리하여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단 한 번뿐인 노년을 여유와 보람 가운데 보내고 싶다. 그리하여 해가 바뀔 때는 정월에, 매일매일은 새벽기도를 통하여 하프타임을 갖고 내게 맞는 작전을 계속 세워가며 덤 인생을 멋지게 살아가려 한다. 지금까지 같이 살아준 아내와 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손자녀들을 축복하며 모두에게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