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초년))

별명

시육지 2018. 11. 28. 01:11



- 별명 / 최병우 -

 

시골 오일장

무슨 일인가 궁금해

사람들 틈새로 보니

약장수가 북 짊어지고

약을 팔고 있다

 

거미줄 뿜어내듯

줄줄 나오는 입담에

구경꾼들 속주머니가

털려버린다.

 

초등교실 쉬는 시간

영화 얘기 촌스럽게 흉내 냈을 때

약장수란 별명을 지어준

꼬마 녀석들

 

그동안 무얼 했나.

궁금했던 친구들!

 

백발 되어 만났어도

약장수!”

하고 손 내밀어 줄 땐

굽은 등 줄기가

파란 하늘로 맑게 펴 오른다.

   


초등학교 사학년 어느 토요일 밤, 수원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열아홉 살 형님이 시골집에 왔다. 시렁에 매달린 남폿불이 안방을 환하게 비추는 가운데 동네 아줌마들이 가득 모여 둘러앉았다. 그곳에서 형님이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영화 이야기를 하였다.

영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에게 활동사진이란 말을 덧붙여 설명까지 해가며 이해시켜야 했다. 영화 내용은 사육신들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실패한 내용인 것 같다.

 

전하, 상감마마

황공하옵니다. 전하

위엄 넘치는 신기한 말에 둘러앉은 동네 아줌마들은 물론, 나도 넋을 잃었다. 나도 남들 앞에 꼭 그렇게 해보리라 결심했다. 이튿날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형님이 했던 대로 흉내를 내었다.

 

상감마마, 전하, 황공하옵니다.”

의젓한 연기에 모두 손뼉을 쳤다.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약장사 같아

그래 맞아, 약장수야

 

라디오도 없었던 그 시절, 오일장에서 약 팔던 사람을 최고의 익살꾼으로 생각하고 시골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 바로 약장수다. 지금도 가끔 칠십 줄 동창들이 그 별명을 불러줄 때면 흐뭇하여 빙긋이 웃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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