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행정리 후)

조급증

시육지 2021. 1. 23. 08:28

조급증

 

삼 그루 판 지나고

장마철이 시작되면

 

여름 내내 툇마루에서

짧은 밤을 조각내어

손가락을 쉼 없이 놀려 대며

짚 멍석을 엮어댄다

 

낮에 김매느라 뻐근한

등허리와 무릎을 주먹 찜질하고

바위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서까래로 떠받치며 한 올씩 엮는다.

 

여름이 가기 전에 끝내야

가을에 벼, 고추 말릴 텐데

쉬지 않고 손 놀려도

오늘도 어제 그 자리인 것 같다.

 

마음은 벌써

영근 곡식이 멍석 위에

널려 온 마당이 가득한데

짧은 밤을 조각내려니 버거워지는구나.

 

차라리

내일은 온종일 비나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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