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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내리는 비

겨울에 내리는 비 하늘 천사 흰옷에 솜사탕 안고 임 찾아가는 길 늦가을 시샘에 눈물 편지를 대신 보낸다. 보고 싶은 얼굴 만나고픈 마음 안절부절 아파트 유리창을 후드득 두드린다. 열리지 않는 창문 밖에서 밤늦도록 부르다가 대답 없어 멍 자국만 주르륵 남긴다. 흘러내린 눈물 편지 바다로 흘러 하늘로 올라가 포근한 이불을 솜사탕 옷에 감추고 얼어붙은 임의 창문을 다시 두드리련다.

새로운 시작 2021.12.15

내 이름은 정(正)

내 이름은 정(正) 왜 나를 가지시렵니까. 천 갈래 만 갈래 생각이 하나로 나란히 멈춰선 내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였나요. 가져가세요. 돌려주지 않아도 좋아요. 당신 마음이 물이라면 마음껏 가져다 쓰세요. 그렇지만 어둠 속에서 사람을 잡아 자기의 철 침대에 맞춰 죽이는 도둑 심보는 절대 안 되고 교실에서 반장을 뽑거나 손님에게 음식 주문받을 때 그리고 의롭고 바른길 가려거든 언제든 주저 말고 가져다 쓰세요. 마지막 부탁은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는 나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해 주세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자가 될 겁니다. 가난한 샐러리 맨이 퇴근길에 빵 가게에 들러 네 식구 저녁으로 식빵 한 개를 샀다. 집에 와 같이 나누어 먹다가 깜짝 놀랐다. 빵 속에 값진 금화가 들어 있지 않은가. 아내는 부자 ..

새로운 시작 2021.12.10

새벽종

새벽종 일흔둘 되기까지 모진 풍파 견뎌내며 새벽을 깨웠던 종 지금도 종탑에서 사명을 다한다. 은은히 퍼지는 소리 영혼아! 잠에서 깨어나라 병마야! 몸에서 떠나가라 잠 못 이루는 사람아! 나오라 나서지 못하는 발길 귀가 어두워서인가. 늦게 잠들기 때문인가. 말 못 할 사연 있어선가, .용기가 없어선가. 너는 아직도 젊다. 더 크고 선명하게 울려라 멀리멀리 은혜로 가슴속 울리려면 네 몸에 멍 자국이 더 깊어져야겠구나.

새로운 시작 2021.12.07

마늘을 엮으며

마늘을 엮으며 모내기 끝나고 햇살이 설 따갑게 쏟아지는 초여름. 갈라진 손가락 헝겊에 밥풀 발라 감으시고 그 많은 마늘을 쉴 새 없이 엮으신다. 열무김치에 걸쭉한 막걸리 한 사발 벌컥 들이키시는 소리에 막내가 딱지치기하다 말고 묻는다. 아버지! 왜 이리 많이 엮어요? 대답 대신 양손을 세 번 쥐었다 펴시더니. 거친 손으로 번쩍 안고 수염을 비벼대신다. 따가워! 그만 해요. 어느덧 지붕 추녀 밑엔 마늘이 군대처럼 열병하고. 굴뚝에서 내뿜는 점심 하얀 연기도 수수깡 울타리 틈에서 쉬었다 떠나고. “허허” 하시는 아버지 웃음만이 대문 밖으로 징 소리 같이 내 달려 졸던 순둥이의 두 눈을 휘둥그레 돌린다. 칠십 되던 해 초여름 아들네 식당 앞 비닐하우스에서 손수 농사지어 캐온 마늘을 식당업 하는 큰아들네 주려고..

새로운 시작 2021.12.05

들길을 거닐며

들길을 거닐며 홍역 앓을 때 할머니 등에 업혀 지나던 들길 생각나서 노을빛 마주하고 홀로 그곳을 찾았다. 원두막 지을 기둥과 지붕 실은 마차 끌고 앞서가는 상머슴 순둥이와 앙증맞게 응석하는 송아지 재롱 뒤에서 아버지 힐끗 쳐다보며 느릿느릿 걷는다. 순둥이가 심심하여 동그라미 그리려고 꼬리 흔들 때 쇠파리들이 윙윙 소리 내며 춤추고 송아지는 어미 젖 찾아 품속을 드나든다. 고삐 잡은 아버지 손등을 움켜쥐듯 살짝 얹어 감싼 채 웅덩이 옆을 지날 때 보이던 연꽃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벼포기만 무성하다. 내가 떠나가면 그곳에 누가 벼포기 되어 열매 맺을까.

새로운 시작 2021.12.03